어느 나라에나 있는 ‘Lost Generation’
어느 나라에나 있는 ‘Lost Generation’
  • 박재항 마케팅 컨설턴트
  • 승인 2019.05.15 17:09
  • 호수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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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잃어버리고 포기해도, 패배하진 않은

1920년대 프랑스 파리에는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비롯한 젊은 미국 작가들이 떠돌고 있었다. 그들은 미국 출신으로 일찍이 런던을 거쳐 파리에 정착한 거트루드 스타인의 살롱에 자주 모였다. 스타인이 자동차를 고치러 들른 정비소의 사장이 일이 서툰 수리공을 두고 ‘génération perdue’라고 했다. 영어로 ‘generation lost’라고 옮길 수 있는 이 표현을 헤밍웨이에게 전하며, 스타인은 “너희들 모두가 ‘lost generation’이야”라고 했다.


‘lost’는 ‘잃은’, ‘패배한’으로 번역된다. 물리적인 물건 등을 분실해도, 보이지 않는 감각을 상실하거나 길을 헤매는 경우도 ‘잃었다’라고 한다. 생명체로서의 생물학적 목숨과 철학적 자아에도 같이 쓰인다. 정비소 사장과 스타인이 지칭한 프랑스의 그 세대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며 우선 자기 청춘의 일부를 바치며 잃었다. 프랑스의 정비공은 기술을 배워야 할 시기에 전장에 있었으니 서툴 수밖에 없다. 너무 많은 죽음을 목격하고, 인간 문명의 진보에 회의감을 갖게 된 미국의 젊은 예술가들은 ‘인생의 길을 잃고’ 방황하는 세대였다.


영국에서의 ‘lost generation’은 전사하고 부상을 당하여 사회에서 사라져버린 젊은이들을 가리킨다. 특히 소위 사회지도층 젊은이들의 참전비율과 사상 비율이 높았던 영국에서는 1883년에서 1900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 전체를 일컫는 표현으로도 쓰인다.

▲ 전쟁, 정치혁명, 사회문제 등으로 나타나는 상실세대는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 전쟁, 정치혁명, 사회문제 등으로 나타나는 상실세대는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난 4월 말에 일본 도쿄를 방문했다. 헤이세이(平成) 시대를 접고 레이와(令和)라는 새로운 시대를 연다고 약간 들썩이는 분위기였다. 1989년 1월 헤이세이 시대가 시작한 다음 해인1990년대 초반 일본은 소위 경제 버블이 터지면서 소위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되었다. 극심한 취업난에 몰리게 된 대략 1970∼1984년생들을 ‘로스트 제너레이션’, 일본어로 줄여서는 ‘로스제네’라고 부른다. 취업시장이 워낙 얼어붙었을 때 사회생활을 시작했다고 해서 ‘빙하기세대’라고도 부른다. 아주 어둡게 표현하면 취업 기회만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꿈까지 잃은 세대로 이들을 일컫는다.중국에도 비슷한 집단이 있다. 현대 중국의 정치 지도자들을 마오쩌둥을 1세대, 덩샤오핑을 2세대, 장쩌민 전 주석을 3세대, 후진타오 전 주석을 4세대, 현재의 시진핑 주석을  5세대로 분류한다. 시진핑의 5세대 지도자들은 문화대혁명의 피해자들로 10대 중반 이후의 청소년으로서 성장기에 제대로 교육 받을 기회를 박탈당했다. 문화혁명 기간 동안 중국의 학교들은 거의 문을 닫았고, 학생들은 홍위병으로 정치 광풍의 선두에 섰으며, 선생들은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도 부지기수였다. 이들이 바로 ‘잃어버린 세대(失落的一代)’라고 불렸다. 그러나 문화혁명이 막을 내리고 이후 개혁개방 시대에 재빨리 적응하며 혜택을 누린 이들의 다수도 바로 이들이었다.


한국에서는 ‘잃어버린 세대’란 표현이 널리 쓰이지는 않았다. ‘이해찬 세대’로부터 교육의 위기를 지적하는 이들은 이후 세대를 제대로 교육 받을 시스템을 잃었다고 한다. ‘88만원 세대’에서 시작하여 ‘3포’를 거쳐 ‘N포’로 확장된 세대명은 경제적, 사회적 기회를 잃은 세대를 지칭한다. 중국과 일본의 ‘잃어버린 세대’가 한국의 청년들에게 한꺼번에 나타나고 있는 형국이다. 실제 목숨이 소멸되는 영국식 ‘Lost generation’화하지 않는 평화의 시대를 바란다. 거투르드 스타인의 ‘잃어버린 세대’가 허무와 혼돈을 뚫고 이룩한 예술적 성과가 우리 한국의 힘겹게 나아가고 있는 세대에서도 펼쳐지길 바란다.

 


박재항 마케팅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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