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묵처방-이범재
백묵처방-이범재
  • 이범재
  • 승인 2004.03.17 00:20
  • 호수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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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신입생 04학번이 캠퍼스에 들어왔다. 새내기들이 나를 보고 인사를 한다. 이런 새내기들을 보고 있으면 너무 아름답다. 그들은 이제 인생의 황금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내가 오리엔테이션에 가서 65학번이라고 하니까, 이해가 안 되는 얼굴로 물끄러미 나를 보던 그 마음이 느껴진다. 그래 , 너희들은 내가 1965년에 대학에 들어온 엄청난 나이의 인생선배라는 것을 상상으로 느낄 수조차 없는 세대라고 하는 것을 나는 안단다. 내가 처음 대학에 들어가서 당시의 최고 노인네 교수님이 겨우(?) 50대 중반이었으니까, 신입생 새내기들의 충격이 지금 얼마나 클 것인지를 이해하여야만 한다고 생각하려니까, 정말 내가 도리어 충격이 온다. 나는 이제 까지 내가 그렇게 나이가 든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항상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과 같은 호흡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닌가 싶다하고 새삼 생각하게 된 계기가 생겼었다. 그 것은 내가 존경하는 선배 건축가가 모 대학에 강의를 나가고 있는데, 어느 날 나와 같이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이런 말을 할 때였다. ‘나는 학생들과 별로 모든 면에서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데 학생들은 굉장히 나를 어려워하고 있는 것같다.“고 하는 순간이었다. 평소 나도 그 선배를 어려워하고 있었는데, 나보다도 30년이나 어린 후배이자, 학생들인 그들이 70이 다 된 사람을 어려워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하고.... . 그런데 이제 생각하니, 그 선배의 경우가 다름 아닌 내 경우인 것을 나도 깜빡하였던 것이다.
건축설계를 30년 넘게 하다보니까, 지나간 세월이 사람을 변하게 하는 구나하고 세월의 힘을 느끼게 한다. 사람이 아무리 잘 났어도 전혀 이길 수 없는 것이 시간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왔을 때는 모든 것이 나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있어왔던 모든 건축은 거짓이고 지금까지의 모든 것은 위선이었다. 모든 것은 개혁의 대상이고, 모든 것은 가치가 없는 무의미한 존재일 뿐이었고, 나의 생각은 모든 것을 개혁하고 바꿀 것이다. 이것이 나의 그 당시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선배, 후배를 가리지 않고 내 생각과 다른 경우에는 가차없이 공격하였다. 안중에 없다는 말이 적합하였다. 내 생각과 다른 것을 가지고 중언 부언하는 것이 싫었고, 내가 생각하는 것이 가장 옳았으므로, 그것과 상반되는 것에 대한 공격과 인격적인 모독은 그 당사자가 당연히 겪어야 할 인과응보라고 생각하였다.

이는 나한테 배우는 제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고, 내가 생각한 대로의 가치를 구비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는 나의 가차없는 공격과 비난에 눈물을 흘린 제자들이 수없이 많았다.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혹독한 시련을 통하여 새롭게 태어나서, 지금의 건축계에서 나름대로의 목소리를 내고, 자리를 잡고 활동하면서 우리 사회에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들이 되었고, 가끔, 나를 높이 평가하기도 하지만, 역시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그 때의 나는 철딱서니 없는 젊은 건축가에 지나지 않았다고 평가되어도 마땅하다고 느껴진다. 젊음의 패기는 열정과 박력과 힘을 상징하지만, 경박함과 인간적 경솔함과 오만과 편견을 더불어 동반한다. 젊음은 그 것 자체로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이 저절로 품격을 갖추고 있을 수는 없다. 아름다움이 품격을 갖추기 위 하여는 그에 상응하는 나름 대로의 노력이 필요하리라고 생각된다.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젊은 교수들중에는 다른교수들에 대하여 학문적이거나, 사회적인 활동에 대한 냉소적인 비판을 하는 경향이 많다. 그 것은 물론 나의 젊은 시절과 같은 자기 오만의 편견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고, 스스로의 자만심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음을 알 수 있다. 학생들이 기성세대에 대하여 무조건 반항적이나,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도 이와 비슷한 경우라고 하겠다.
세월이 지나서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회의와 지침에 대한 고민이 생기기 시작하는 그 시기는 사실은 나에게는 인간의 성숙을 알게 하는 좋은 시기였음을 이제 와서 알게 되는 것이다. 그 것은 인간의 삶이 단순한 지식의 보고에서 모든 것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여 주는 것이다. 인간이 지식과 사회의 보장과 그리고 모든 재정적인 보증 아래에서 행복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이러한 것의 부족한 상황에서 비로소 사람의 냄새를 맡고, 좌절의 문턱에서 새로운 생명의 숨결을 느낀다는 것을 알 게 될 때야 드디어 사랑과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건축설계 30년 동안 남을 위하여 설계를 하여주고, 그 설계안대로 집이 지어지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작업이었는지를 지금에서야 알게 된 것이 너무 부끄럽지만, 이제라도 알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04학번 새내기 여러분,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은 다 남을 위한 것이다. 나를 위한 공부는 대학에 오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여러분이 대학에 진학한 것은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을 위하여 내가 배운 것을 얼마나 유용하게 베풀 수 있는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앞으로 4년 동안 여러분은 다른 우리와 같은 사람들을 위한 베품의 방법을 배우고 그것을 나눔으로서 풍요로운 우리들을 만드는 데에 기여하여 주기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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