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회 대학문화상 시 부문 당선작 「첫사랑」 및 당선소감
제43회 대학문화상 시 부문 당선작 「첫사랑」 및 당선소감
  • 김혜경(문예창작·4)
  • 승인 2020.04.14 17:13
  • 호수 14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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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김혜경(문예창작·4)

 

쨍한 모래바람에 걷다 멈추는

봄날, 안경을 벗고 눈을 비비는 동안

세상 모든 경계들은 흐릿해진다


(오늘은 부리로 나뭇가지를 줍는 새를 만났다

내가 저를 미행이라도 한다는 듯이

공중의 골목을 돌고 돌아 나를 따돌리며

사라지는 새 그림자에는 발이 없었어

발을 헤매게 하던 계절들 무덥고 춥고 서럽던

모두 더듬거리며 되짚어온 봄의 초입

우리는 엉덩이에 푸른 멍을 요처럼 깔고 앉아

그 오래 전에도 우리를 여기에 남겨두고 사라졌던

새의 이야길 하지 처음 눈을 뜰 때 설핏 스쳐간

빛, 클수록 나는 누군가 닮았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되고

찬 벤치에 앉아 내려다보는 제비꽃

책장을 넘기듯 바람 넘기며 조는 그 자줏빛

어쩔 수 없이 새를 닮은

오랫동안 품어온 알 같은 어둠에

사각사각 너의 얼굴이 새겨지고 있다)


아파트 화단에 한 송이씩 피어나던 제비꽃들은

자꾸 자꾸 서로를 부둥켜안는지

지나치며 볼 적마다 수가 늘더니 끝내 한 무리가 되었다


■ 운문(시) 부문 당선소감

김혜경(문예창작·4)
김혜경(문예창작·4)

누군가를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은 실은 그에게서 자기 자신의 싫은 부분을 보고 있는 거라던 말을 되새겨보며 쓴 시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아닌 것들로 이뤄져 남에게서 나를 보기도 하고 그러는 것 같아요. 요즘은 마음에 드는 타투 도안을 모으는 데 시간을 쓰곤 합니다. 평생을 가지고 다녀야 할 몸에 다른 사람들이 흔적을 남겨준다는 게 좋습니다. 빼곡하게 낙서가 된 깁스를 보면 뼈 부러지는 일쯤 별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져요. (깁스에 낙서하려고 몰려드는 친구들이 있는 시기라면 실제로 뼈가 금방 잘 붙겠지만요.) 그렇게 몸이 가벼운 사람이고 싶습니다. 해묵은 아픔은 잊으려 애쓰기보다 다르게 기억되도록 살고 싶습니다. 제 글을 좋아해 주고, 언제나 실없는 시간을 함께해주는 소중한 친구들에게 깊은 사랑과 감사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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