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조별과제, 분노를 담다
④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조별과제, 분노를 담다
  • 음악칼럼니스트 천미르
  • 승인 2020.06.03 00:07
  • 호수 14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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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내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는 조원들의 잔머리를 뛰어넘으니까.” 이런 내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무책임한 사람들이 대학교에 존재하는 걸까. 연락을 받지 않는 것은 기본, 회의 때 무단으로 참석하지 않는 것부터 각자 맡은 파트를 제대로 해오지 않는 것까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화가 나고, 나의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게 해주는 조별과제. 그동안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16 Shots - Stefflon Don

조곤조곤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할 때 잘 알아듣고 자기 할 일을 잘하지, 왜 결국 뚜껑이 열리게 한 것인가. 생각보다 차분하게 시작되는 벌스 부분에서부터 긴장감이 흐르고 브릿지에서 화가 한계치에 임박한 느낌을 주며, 마지막으로 훅에서 거침없이 쏟아내는 랩핑으로 상대방을 겁먹게 해버리는 첫 번째 곡이다. 90년대 갱스터 랩이 떠오를 정도로 박력 있는 랩핑과 현대적인 비트를 곁들여 강렬하면서도 매력적인 곡이 탄생했다. 참고 또 참아왔지만, 이성의 끈을 놓은 그 순간, 상대방이 정신 차리지 못할 정도로 화를 쏟아내는 누군가의 모습이 생각난다.

 

Work B**ch - Britney Spears

발표와 조원 평가까지 모두 끝난 후, 자신의 평가점수만 왜 이렇게 낮은지 따지러 온 후배에게 과탑의 똑 부러진 언니가 톡 쏘아 말하는 팩트들. “그러게 팀 회의에 빠지지 말고 잘 참여하고 자료조사 좀 철저히 하지 그랬어”라고 팩트로 때리는 팀장의 모습이 떠오른다. 한 시대를 풍미한 슈퍼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곡으로, 좋은 성적과 후한 팀원들의 평가를 받고 싶으면 조 모임에서 자신의 맡은 바를 잘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곡이 아닐까. 무임승차를 하려는 양심 없는 누군가에게 쏴 붙이는 시원한 사이다 멘트처럼 느껴질 것이다. 특히 썩소를 지으며 “그러게 잘하지 그랬어”를 시전하는 것 같은 브리트니의 보컬이 인상적이다. 통쾌한 복수를 꿈꾸며 끝까지 참고 있는 이 시대의 모든 조별과제 조장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곡이다.

 

Jungle - X Ambassadors & Jamie N Commons

아무것도 모르는 새내기가 왜 그렇게 선배들이 조별모임을 싫어했는지 깨닫게 되는 순간을 보여주는 세 번째 추천곡이다. 컨트리 락 아티스트 제이미 앤 커먼스와 강렬한 사운드가 인상적인 밴드 엑스 앰배서더스의 콜라보 작품으로, 의도적으로 삽입된 노이즈 사운드와 기타의 디스토션, 울부짖는듯한 백그라운드 보컬과 드럼과 함께 비트를 이루는 박수 소리는 제목 그대로 거친 정글의 느낌을 준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못하고 까딱하면 모든 일을 떠맡게 돼버리는 냉혹한 조별과제의 세상에 내던져진 순진한 새내기에게 뼈저린 교훈을 주는 듯한 곡이다. 화기애애한 조별모임을 상상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꿈 깨!”라고 소리치는 이 곡을 들려주면 좋을것이다.

 

Fuck You - Lily Allen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제목부터 대놓고 시원하게 욕을 하는 그 노래. 릴리 알렌을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들어준 그 노래. “이미 이 조별과제는 망해버린 것 같아. 나도 이제 몰라. 너 죽고, 나 죽자”라며 해탈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 마음이 편해진다는 것을 왜 이제서야 깨달은 것인지 후회가 될 정도로 발랄한 분위기가 인상적인 곡이다. 이 곡은 엉망진창이 돼버린 조별과제를 바라보며, 포기하기 일보 직전인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미 망한 거, 그동안 스트레스를 준 조원들에게 속 시원하게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려주자.”

 

Warriors - Imagine Dragons

“그래, 너희가 그렇게 나오시겠다. 나도 끝까지 괴롭혀줄게.” 연락도 안 받고, 자기 할당량도 항상 해오지 않는 조원들을 바라보며 그동안 숨겨오던 악바리 근성이 튀어나오는 순간을 보여주는 것 같은 곡이다. 우리에게는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게임 대회의 주제곡으로 더 많이 알려진 곡이다. 어떻게든 자신의 할 일을 미루려는 무책임한 조원들과 어떻게든 일을 시켜 과제를 마무리하려는 조장 사이에 긴장감을 표현하는 것 같다. 결투를 앞선 자들의 비장함을 표현한 드럼의 사운드와 현악기들이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자료조사는 끝났는지 새벽에도 끊임없이 연락하고, 단톡방에서 부족한 부분을 하나하나 지적하고, 이러면 팀원 평가를 좋게 해줄 수 없다고 압박도 주는 흑화한 조장의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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