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삶의 위기, 그리고 생태계의 위기
인간 삶의 위기, 그리고 생태계의 위기
  • 단대신문
  • 승인 2020.09.29 13:16
  • 호수 1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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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우리의 삶은 참으로 어렵다. 방역 당국, 병원, 소상공인, 대학만 어려운 것이 아니다. 너나 할 것 없이 거의 다 어렵다. 그런데 이 어려운 시기에 우리의 대화는 많은 경우 각자의, 특정 집단의, 인간의 어려움을 말하는 데서 그친다.

올해 우리가 겪는 어려움은 어디에서 왔는가? 근거가 부족한 정치적 음모론을 믿지 않는다면 바이러스는 자연에서 왔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전문가들의 진단에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그것이 일종의 인수(人獸) 공동 감염병으로, 인간이 야생동물을 건드리고, 또 야생동물이 사는 터전을 파괴함으로써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된다. 또 다른 재해도 있었다. 여름 내내 폭우가 쏟아졌고, 이어서 두 건의 강력 태풍이 불어 닥쳤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위기의 징후이다.

이렇게 코로나19, 엄청난 폭우, 태풍은 하나의 원인으로 귀결된다. 생태계의 위기가 그것이다. 생태계의 위기에 대해 언론에서는 흔히 소비습관의 변화를 제안한다.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反) 생태적 소비는 반(反) 생태적 생산에서 비롯된 것이다. 애초에 플라스틱 제품을 생산하지 않으면 그런 제품의 소비를 피하려 노력할 필요도 없다. 그런 이유에서 환경친화적 소비만 말하는 것은 한계가 분명하다. 사회적 생산양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이 위기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생태윤리를 바탕으로 자연을 다루는 인간의 기술이 새롭게 바뀌지 않는 한, 인류에게 희망은 없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이렇게 반문한다. 기술 혁신이 끊임없이 이어져 온 것이 인간의 역사이고, 특히 지난 수 백 년간 인류는 물질적 편리함을 계속 맛보았는데, 그런 변화가 가능하겠느냐고 말이다. 물론 그렇다.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근대 산업사회가 영원할 것이라는 생각은 생태적 문명을 건설해야 한다는 생각보다도 더 몰역사적이다. 인간의 끝없는 물욕 추구를 당연한 듯이 생각하는 것 역시 신인류의 탄생 가능성을 너무 쉽게 부정하는 태도이다. 게다가 미래의 생태 문명이 산업사회의 기술적 성과와 축적된 자본을 이어받은 것일진대, 그것이 전근대적인 향촌 사회로의 회귀를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뉴노멀’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첨단 과학기술만 잘 이용하면 인류가 이 위기의 시대에도 새로운 형태의 노멀을 창출할 수 있을 듯이 말한다. 하지만 만약 그것이 바이러스의 지속적 창궐로 마스크가 영원한 필수품이 되고, 비대면이 일상이 되는 것을 뜻한다면 결코 ‘노멀’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미증유의 비정상’을 치장하는 말에 불과할 것이다. 이는 마치 해마다 기상 이변이 속출하며, 더욱 강력한 태풍이 불어 인간의 생존이 위협을 받는 것이 ‘노멀’일 수 없는 이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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