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재 함부로 찰 것인가
연탄재 함부로 찰 것인가
  • 이소영 기자
  • 승인 2022.01.04 15:40
  • 호수 148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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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영 문화부장

 

태백은 종종 언론에서 언급되는 도시다. 언론에서는 탄광 도시 태백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함께 고민하겠다는 희망찬 말을 하고는 한다. 검은 다이아몬드의 후예라며 빛나던 그 시절을 포장한다. 기자는 그렇게 포장된 태백을 보며 괜찮은 줄로 알았다. 하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필요할 때는 광부와 탄광 지역을 석탄 증산에만 몰아붙이더니 석탄 수요가 줄어들자 광부와 탄광 지역을 폐기했다. 1988년 347개였던 국내 탄광은 이제 4개만이 연기가 이따금 피어오른다. 하지만 이마저도 희미해져 간다.

 

빠른 기차는 태백역에 서지 않아 새마을호를 탔다. 산골을 굽이굽이 달리며 덜컹거렸던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습하고 더운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갑자기 비가 내리기도 했고 갑자기 쨍쨍해지기도 했다. 그런 조건 속에서 기자는 발로 뛰고 손으로 쓰며 취재를 시작했다. 기자가 방문한 탄광은 철암역 근처에 위치한 철암역두선탄시설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전직 광부의 말을 들으며 기자는 지금껏 힘들다는 말을 남발해 온 지난 시간을 반성했다. 그의 고됐던 컴컴한 탄광에서의 노동 세월을 듣고 있노라면 기자에게 힘든 일이란 건 애초부터 없었던 것만 같았다.

 

1940년대 태백 지역 무연탄을 전국으로 실어 나르는데 큰 역할을 하던 철암역은 1990년대 들어 석탄 산업이 침체되면서 함께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2010년에는 매표 업무가 중지됐을 정도로 이용객이 크게 줄었다. 2013년 백두대간협곡열차 V-트레인과 중부내륙순환열차 O-트레인의 종점으로 사용되면서 이용객이 생기긴 했으나, 여전히 기자가 방문한 날에는 사람이 없었다. 장성선탄소 경비원은 사람이 너무 없으니 폐광을 하게 된다면 선탄소를 활용한 관광 장소를 만들어 줘야 한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정부와 그들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고 있다.

 

기자가 다녀온 철암역 주변은 폐허가 된 탄광촌이 새로운 문화로 탈바꿈해 그때의 애환을 엿볼 수 있다고 소개된다. 그러나 화려한 기억을 회상하고자 만든 조형물은 녹슨 채 방치돼 있었고 석탄을 캐는 광부가 들고 있는 삽은 자루만이 남아 있었다. 문화재청 등록문화재인 철암역두선탄시설을 벽화로 그려 홍보한 곳은 그저 주차장으로 활용되고 있을 뿐이었다. 철암역 거리 ‘기억하는 벽’에 적힌 ‘철암, 세월이 벗어난, 세월이 빗겨나간, 시간이 멈춰 버린 곳’이라는 글귀는 기자를 씁쓸하게 했다. 이런 식으로 시간이 멈춰 버려도 될 것인가. 석탄 산업 합리화를 마무리하며 지역의 존폐가 달려 있는 이 시점이야말로 전직 광부에 대한 예우가 필요한 때가 아닐까.

 

취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찻간에서 뜨거웠던 도시에 대해 생각했다. 기자가 본 태백은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가 떠오르는 도시였다. 폐광을 우려하는 주민들과 오늘까지도 근무하고 있는 광부들, 그리고 정부. 그들 간의 원만한 소통은 쉽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때 한 국가의 경제를 책임졌지만, 지역 소멸까지 우려되고 있는 태백은 형태만 어렵사리 보존된 연탄재와 같다. 기자는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찰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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