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폭을 맞춰 일생을 함께
보폭을 맞춰 일생을 함께
  • 윤다운 기자
  • 승인 2022.05.31 13:27
  • 호수 149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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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마음에 드는 누군가와 더 깊은 관계를 맺고 싶을 때 산책을 청한다. 서로의 보폭을 맞추며 걸을 때 상대와 가까워지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다른 이와 함께하는 산책은 단순히 특정한 목적지로 이동하기 위해 걷는 것과는 지극히 다른, 의사소통의 영역이다. 모든 사람은 서로 다른 보폭과 속도를 갖고 있다. 그렇기에 옆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앞만 보며 걷는다면 한 사람은 뒤처진다. 상대에 대한 배려 없이 자기 사정만을 고려한다면 잠시의 산책도 함께할 수 없다. 그런데 평생을 같이 걸어갈 존재가 자기 보폭만을 고집한다면 둘의 관계는 계속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만난 한 강아지는 사람도 종종 잊고 실수할 수 있는 이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시각장애인 안내견을 실제로 본 적 없었던 기자의 상상 속 안내견은 주인의 길 안내를 위해 사방을 예의 주시하는 직업견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기자가 만난 시각장애인 안내 훈련견 ‘참이’는 사방을 주시하기보다도 훈련사의 기분과 상황을 더 신경 썼다. 훈련사가 자신의 옆에서 너무 떨어져 걷지는 않는지, 자신의 걸음이 빠른 것은 아닌지 수시로 확인했다. 횡단보도나 갈림길이 나오면 걷는 것을 잠시 멈추고 다음 경로가 궁금하다는 듯 훈련사를 돌아봤다. 


참이의 행동에서 기자는 두 가지를 느꼈다. 첫째는 훈련사가 가는 곳은 어디든 따라가겠다는 신뢰였으며 다른 하나는 이다음에는 어디를 가게 될지 몹시 기대된다는 태도였다. 참이의 이런 모습이 신기해 훈련사에게 묻자 그는 “강아지들은 훈련받는 과정을 놀이라고 여겨서 매번 같은 코스를 돌면 오히려 지루해하죠”라고 답했다. 이 답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기자는 깨달았다. 안내견 훈련에 ‘훈련'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이를 보며 안타까워하는 사람들도 모두 인간의 관점에서 강아지를 이해한 것이란 사실을.


훈련사 옆에 붙어 꼬리를 흔드는 참이는 더이상 훈련견으로 보이지 않았다. ‘바닥 높낮이가 달라질 때마다 멈춰 서면 간식을 주는 놀이’를 하는 강아지가 있을 뿐이었다. 참이는 이 시기를 통해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온 일 주인과 나란히 걸으며 날마다 새로운 모험을 하게 될 것이다. 


한 시각장애인 유튜버는 자기 일상의 모든 것이 도전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이 도전이 막막하지 않은 이유는 언제 어디든 안내견이 함께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떤 도전이든 물러서지 않고 자신과 보폭을 나란히 해줄 친구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혹시 그동안 자신도 모르게 시각장애인 안내견과 그의 주인을 막힌 관점으로 보고 있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자. 어떤 이의 삶을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자신뿐이기에 타인의 삶을 함부로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 그 주체가 동물이라고 해서 이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안내견과 시각장애인이 겪는 장애물은 더 커지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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