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위기의 순간에도 놓지 않은 춤… 지금의 나 만들어”
“인생 위기의 순간에도 놓지 않은 춤… 지금의 나 만들어”
  • 서희 기자
  • 승인 2023.09.05 14:15
  • 호수 15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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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준(38) 안무가
그냥 허비되는 시간은 없다
하고싶은 일은 다 해보길

몸으로 음악을 표현하는 ‘안무’는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안무가는 3분 내외의 시간 안에 음악 세계를 감각적으로 그려 아티스트가 가장 빛날 수 있는 순간을 선물한다. 안무가로서 최정상 위치에 있음에도 오직 춤 자체에 대한 애정으로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 안무가 최영준(38)씨를 만났다.

 


- 자기소개 부탁한다.

“안무가 최영준이다. 세븐틴, 트와이스, 프로듀스 시리즈 등의 안무에 참여했고 최근에는 ‘손오공’ 안무를 제작했다. 댄서로서 춤을 춘 지는 오래됐지만 안무가로서의 첫 안무는 다른 분들에 비해 다소 늦은 30세 무렵부터 시작했다.”


- 안무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계기는.

“금전적인 이유로 29세까지 클럽 무대 위에서 춤을 췄다. 그러던 중 1년 동안 춤을 추지 못할 만큼 큰 부상을 입었고 ‘춤을 영원히 못 출 수도 있겠다’라는 위기감이 엄습했다. 그때 치열하게 ‘내가 진정으로 올라가고 싶은 무대’를 고민했다. 결론적으로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댄서들의 대타 역할부터 차근차근 나아갔다. 비록 남들보다는 늦게 안무가의 길을 걷게 됐지만, 안무가가 되기 전까지 다양한 춤을 시도했던 경험은 지금까지도 큰 자산이다.”


- 안무를 제작할 때 꼭 지키는 원칙이 있다면.

“다양한 사람들이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노력한다. 아티스트의 관점에서 ‘이 안무로 무대를 올라갔을 때 멋진 퍼포먼스가 가능한가’에 대해 고민하고, 팬의 입장에서 ‘나의 아티스트를 빛나게 만들 수 있는 안무인가’를 고려한다. 그런 다음 안무의 작품성이나 완성도에 대한 열망을 더해 안무를 완성한다.”


- 안무에 대한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는가.

“우선 음악의 가사·멜로디·분위기를 중점으로 마인드맵을 그린다. 보통 40개 정도의 키워드가 나오는데 그 중 움직임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5~6개 정도이다. 선별된 아이디어를 음악의 흐름에 따라 적절하게 배치하면서 안무의 완성도를 높인다. ‘프로듀스48’ 프로그램에서 작업했던 곡 ‘루머’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동작도 같은 과정을 거쳤다. 귓속말을 핵심 단어로 선택한 후, 사람들의 귓속말을 통해 비밀스럽게 소문이 퍼지는 모습을 안무적으로 구현했다.”


- 아티스트와 소통을 잘하는 것 같다.

“솔직히 안무가라는 직업은, 단순히 훌륭한 안무만으로는 최고의 위치를 유지하기 어렵다. 결국 이 일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무수한 교류로 이루어지기에, 능력이 비슷하다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 더 많은 선택을 받는 것 같다. 때로는 자신이 손해 보는 상황이 있더라도, 언젠가는 돌려받는다는 것을 이 길을 걸으며 깨달았다. 그래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 정성을 기울이곤 한다.”


- 본인만의 무기가 있다면.

“아티스트에 대한 이해가 나의 무기라고 생각한다. 협업하는 아티스트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을 기반으로 내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아티스트에게 딱 맞는 안무를 선물한다. 단순히 멋있게만 보이는 동작을 추가했다면, 그 안무는 작품성이 높을 수는 있어도 완성도 높은 퍼포먼스로 이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영준 안무가가 연습실에서 본인이 제작한 안무를 추고 있다.
▲최영준 안무가가 연습실에서 본인이 제작한 안무를 추고 있다.


- 인생에서 위기가 있다면.

“두 시기가 떠오른다. 하나는 앞서 언급했던 부상을 겪었던 시기이고, 다른 하나는 처음 춤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순간이다. 19세 때, 댄서로서의 꿈을 품고 14만원을 가지고 광주에서 무작정 서울로 향했다. 부모님의 강력한 반대 속에 혼자서 생계를 유지하며 댄스팀에서 막내로 활동했지만, 결국 금전적인 이유로 광주로 돌아가야 했다. 이후 다시 서울에 왔지만, 어려운 생활이 반복됐고 결국 클럽 무대 위에 서게 됐다. 그 후에는 앞서 언급했던 과정을 거쳐 지금 이 자리에 왔다.”


- 안무에는 저작권이 없다고 들었다.

“이는 꽤 현실적인 문제이다. 안무가 유명해져서 숏폼에 많이 게시돼도 해당 안무가에게 직접적인 경제적 이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안무가가 안무를 만들어도 해당 아티스트의 회사에서 안무를 소유하는 계약이 일반적이다. 미래에 더 자유롭고 안정적인 창작 환경을 위해서는 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안무 저작권을 연구하는 회사를 설립했다. 댄서들이 노력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


- 인생에서 가장 보람찬 순간은.

“대학신문의 기자가 내 인생에 대해 질문하는 오늘과 같은 날이다. 내 이야기가 청춘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지금까지의 여정을 인정받은 것 같아 매우 뿌듯하다. 돈을 벌기 위해 연습실에서 안무를 구상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인생의 경험을 나누는 이 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차후 여건만 된다면, 다양한 학교의 댄스 동아리를 찾아가서 같은 꿈을 꾸는 아이들에게 재능을 기부하며 살고 싶다.”


- 꿈을 이루기 위해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간절함이라고 생각한다. 간절함이 불러온 적당한 시기와 질투는 나를 성장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더불어 자신이 하는 일을 정말로 좋아한다면 그만큼 몰두할 수 있는 원동력이 돼 최고의 성과를 이룰 수 있는 것 같다.”


- [공/통/질/문] 마지막까지 자신과 함께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현재의 내 모습이다. 여러 힘든 상황을 겪으면서 각지고 모난 모습이 깎여 겸손할 줄 아는 내가 됐다고 생각한다. 미움 없는 지금의 나와 변함없이 함께하고 싶다.


- [공/통/질/문] 이 글을 읽는 대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저 허비되는 시간은 없다. 클럽에서의 시간조차 안무 창작의 자양분이 된 것처럼 어떤 경험이든 결국 도움이 됐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청춘들이 원하는 일을 다 하고 살았으면 한다. 끝으로 단국대 학보사에 내가 나온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하고 새롭다. 나의 이야기가 학생들 인생에 아주 작게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너무 반가운 시간이었다.


기자는 인터뷰를 진행하며 그가 인간적인 교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느꼈다. 그의 말투에는 상대의 삶에 대한 깊은 존중이 녹아있었으며, 이는 이 시대에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증명하는 듯했다. 그 모든 태도의 근간에는 춤에 대한 열정이 여전히 숨 쉬고 있었다. 춤을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춤꾼’ 최영준은 오늘도 춤을 위한 발걸음을 내디딘다.

 

 

서희 기자 heeyaa@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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