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패션이 달라진다면
국회의 패션이 달라진다면
  • 김희량 패션칼럼니스트
  • 승인 2023.11.07 14:37
  • 호수 15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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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폄하된 ‘여성성’의 고발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한 류호정 국회의원

국회의원 류호정의 인스타그램을 보다 보면 그의 다채로운 스타일이 눈에 띈다. 얼마 전 국정감사 시즌에는 연분홍색 자켓과 아래로 하늘색 시스루 프릴이 달린 치마를 입었다. 퀴어문화축제에서는 배를 드러낸 크롭티와 반바지를 입고 등장했고, 기후 정의 행진에는 H라인 원피스를 입었다. 이미 그는 2020년에 빨간 원피스를 입고 국회 본회의장에 등장하며 `국회의원은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촉발하기도 했다. 물론 그는 수트도 자주 입는다. 즉, 그의 차림새는 수트라는 국회의원의 유니폼 안팎을 넘나든다. 국회라는 공간의 성격과 그의 차림새를 어떻게 읽어볼 수 있을까?


여성이 남성의 공간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남성의 전유물을 제 것처럼 소화해야 했다. 복식사를 훑어봐도 그렇다. 1930년대는 남성들이 전쟁에 동원되면서 여성이 산업의 공간을 채웠다. 여성이 비로소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한 시기다. 이때 여성은 처음으로 실용적인 목적으로 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남성의 자리를 여성이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남성의 복식 또한 수용한 것이다. 이때 이후로 여성 복식에 바지가 적극적으로 확산됐다.


전쟁이 끝나고 1960년대에는 피임약이 등장했다. 상황에 맞게 임신을 조절할 수 있게 되자, 여성의 사회 진출이 더욱 활발해졌다. 그러자 여성을 위한 수트가 등장했다. 여성이 공식 석상에서 바지를 입을 수 있게 된 것은 사실상 이때부터였다. 남성이 점유했던 공간에 여성이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여성의 복식은 어김없이 남성의 복식을 닮아갔다.


여성이 치마를 거부하는 것은 성평등을 위한 움직임이었다. 여자아이에게 치마를 입히고 남자아이에게 바지를 입히는 교복을 보자. 여기서 치마는 성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시스템을 상징한다. 그러나 성평등은 여성이 기존에 점유해 왔던 특징을 부정하고 거부해야만 가능한가? 남성의 복식을 수용해야만 여성이 국회에 출입할 수 있는가?


국회의원 류호정의 책상 위 스크린에는 노란색 케이스가 끼워져 있다. 이렇게 취향껏 물건을 꾸미는 모습이 전통적 여성성을 답습하는 것처럼 느껴지는가? 반대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남성으로 단일하게 구성돼 온 국회 이미지의 전통적인 여성성은 균열을 일으키는 요소가 된다. 이는 국회의 문제가 다양성의 실패임을 지적한다. 사회 구석구석 존재하는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하기에 국회의 대화는 탁상공론이 된다. 국회는 무채색 수트가 아닌, 핑크와 보라와 무지개색이 가득한 공간이 돼야 한다. 숏컷의 여성과 원피스를 입은 여성, 퀴어와 장애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국회로 진출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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