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그대들의 행진
젊은 그대들의 행진
  • 김미지(국어국문) 교수
  • 승인 2023.11.21 14:15
  • 호수 15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어국문학과에서는 매년 11월 셋째 주에 ‘작가와의 만남’이라는 행사를 개최한다. 국어국문학과의 학술부 세 팀 가운데 하나인 현대문학부 학생들이 준비하는 뜻깊은 가을 축제이다. 학과 동아리 차원의 작은 행사임에도 그동안 수많은 시인과 소설가들이 흔쾌히 우리 대학을 찾아줬다. 학생들 역시 이 만남을 위해 연초부터 작가를 선정하고, 여름방학에도 작품 독회를 이어가며 꼬박꼬박 문집까지 발간하는 열의로 귀한 만남을 준비한다.


올해는 다른 해와는 달리 국어국문학과 현대문학부만의 행사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학교 홍보실에도 홍보를 부탁하고 단대신문 기자들에게도 참가를 요청했다. 지난주에 치른 이번 ‘작가와의 만남’ 초청 작가가 우리 대학을 졸업한 소설가 이서수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올해 「젊은 근희의 행진」이라는 단편소설을 표제작으로 하는 소설집을 출간하고 ‘젊은 작가상’을 수상하는 등 가장 촉망받는 바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런 작가가 오직 열정 넘치는 후배들을 만나기 위해 서울의 서쪽에서부터 한걸음에 달려왔다. 덕분에 저녁 시간이었음에도 서른 명이 훌쩍 넘는 청중과의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서수 작가의 작품들은 환상과 SF로 흥성한 요새 소설 추세와 다르게 지극히 현실적인 요새 젊은이들의 삶과 고민을 담고 있다. 서울의 반지하 방을 전전하는 모녀라든지 유튜버로 유명세를 꿈꾸다 사기를 당하는 사회 초년생, 먹고살기 위해 죽기보다 싫은 성인 웹툰을 그리는 청년 여성 등이 등장한다. 소재만 보자면 암울하고 무거울 것 같지만 결코 절망으로 빠져들지 않는 힘이 있으며, 리듬감 있는 문장과 따뜻한 시선으로 독자들의 마음에 여운을 남긴다. 우리 대학 출신이라는 것 말고도 더 많은 젊은 학생들이 만남의 시간을 가졌으면 했던 이유이다.


이서수 작가는 법학과 학생이었으나 소설이 더 재미었던 문학청년이었고, 서른이 되기 직전 등단하기까지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했다고 한다. 신춘문예로 등단했어도 청탁이 거의 없어 방황은 계속됐고, 그럼에도 소설 쓰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십 년, 누가 알아주든 말든 차곡차곡 쌓아 올린 글의 숲은 요 몇 년 사이 「당신의 4분 33초」, 「헬프미 시스터」와 같은 장편소설이 돼 나왔고 상찬을 받았다. 세상이 그녀의 오랜 노력에 화답한 것은 그러니까 마흔이 다 돼서의 일인 것이다. 


전공이 힘들고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졸업 후의 진로가 막막해서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적지 않게 만난다. 그럴 때마다 아직 창창한 이십 대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 보지만, 젊은 마음에는 그다지 와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서수 작가를 통해서 또다시 깨닫고 확인한다. 묵묵히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그 시간은 헛되지 않으리라는 것, 자신과 같은 이 시대 젊은이들과 함께라면 그 길이 외롭지 않으리라는 것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