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 사실의 지위를 부여한다는 의미는
감정에 사실의 지위를 부여한다는 의미는
  • 손지민(철학과)교수
  • 승인 2024.04.09 14:17
  • 호수 15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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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은 매일, 매 순간 나의 존재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감정은 무의식적 수준부터 의식적 수준, 그리고 심신의 신경생리계 수준 모두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감정은 또한, 개인이 그것을 소유하였는가, 개인의 특정 행동의 원인이 되었는가의 여부 판단에 따라 ▶진정성과 책임의 문제 ▶자의-타의 문제 ▶사회적 또는 대인 감수성 문제 ▶신경쇠약 증명 문제 등을 야기하기도 한다. 감정은 개인 대 개인 또는 집단 내 소통과 행동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며, 우리의 소비 행위와 문화적 산물에 대한 수용 방식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이러한 갖가지 상황들 속에서 분명한 것은, 감정이 분명 위 갖가지 상황들의 ‘도화선’으로 작용한다는 주장이 성립되더라도 그것들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감정의 본성에 대한 오늘날의 과학적 연구는 이러한 문제들에 어떻게 접근하고 있을까? 감정을 계량화함으로써 그것의 본질을 학술적,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일은 매우 까다롭다. 아무도 원인으로서의 감정을 눈으로 확인한 적이 없으며, 감정이 어떤 사람의 행동이나 표현의 원천 또는 원인으로 지목될 수 있다고 하더라고 그 사람의 정신에 대한 어떤 확실한 정보를 줄 수 있는 것으로서 받아들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만약 감정이 단지 신경계 내 전기화학 신호의 패턴으로서만 규정된다면, 거기에서 우리는 감정이 만들어내는 인격과 책임, 소유 여부, 개인 정체성 등의 문제에 대한 어떠한 실마리도 찾을 수 없게 된다. 혹자는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서 더더욱 윤리와 법에 의존하여 감정의 표출의 절제 또는 억제를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개인의 감정은 표출되기 전부터 그 개인의 심증을 우선 구성하기에 상기된 각종 문제의 원인으로서의 감정의 실체를 연구하는 지속적인 노력은 필히 요구된다. 우리는 감정이 우리 모두의 존재 방식에 어떤 ‘공통 분모’로서 작용하는가를 고찰해야 한다. 이를 정립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체험할 수 있는 동시에 이해할 수 있는 보편 근거가 필요할 것이지만, 주지하듯이 이는 아직 과학으로도, 인문학으로도 성취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현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타인의 감정에 공유 할 수 있는 ‘사실’의 지위를 부여하는 일이다. 과학적으로 확인된 감정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의식적 제어에 저항하여 우리의 판단이나 결정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뇌에서 의식적 판단과 결정을 관장하는 전전두엽피질은 감정 반응의 가장 핵심이 되는 편도체로 직접 신호를 보낼 수 없지만 편도체는 뇌 신경계와 생리계 전체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타인의 감정에 명백한 사실의 지위를 부여한다면, 서로에게 여유를 갖고 접근할 수 있다. 단번에 타인의 감정을 판단하고 규정하는 편향을 멀리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기대는 그 기대에 보편 근거가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명백한 임무이자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손지민(철학과)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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