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선동 골목에서 마주친 서민들의 애환
익선동 골목에서 마주친 서민들의 애환
  • 전건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4.04.09 14:41
  • 호수 15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 삼겹살과 소주
삼겹살이 맛있게 익어가고 있다.
삼겹살이 맛있게 익어가고 있다.

2024년 3월의 마지막 날, 어스름 익선동 골목으로 들어섰다. 일요특강을 마치고 구름처럼 밀려 떠다니는 젊은이들과 외국 관광객들이 게딱지 같은 종로3가 익선동 음식점 골목을 누비는 것은 또 다른 멋과 삶의 여백이 아니겠는가. 

 

불판에 삼겹살을 굽고 묵은김치를 구워 소맥을 즐기는 풍경이 이젠 너무나 정겨운 풍경이 되었고, 그 틈에 외국인들까지 끼어 국제 식도락 잔치가 열렸다. 구절양장 미로를 헤매다 마침내 눈에 띈 완도맛집이라. 한번 믿어보기로 한다. 전라도 끄트머리 완도에 젊은 청춘들이 흘러와 낭만 가객 술잔을 기울이는 정취, 그래 좋다. ‘우리도 한번 취해볼까나.’

 

삼겹살 3인분과 맛깔스러운 묵은김치, 싱싱한 쪽파김치, 상큼한 야채 소쿠리에 청양고추 서너 개, 척척 삼겹살을 올리고 마늘 한 접시 불판에 김치와 섞어 노릿노릿 익혀가니 벗과 술은 일체라. 삼겹살 한 쌈 싸서 입에 넣고 소맥 한잔씩 원샷. “캬!” 감탄사는 이런 때 쓰라고 세종대왕님이 만들어주셨구나.

 

문득 발길 멈추어 들른 완도맛집에서 전라도 특유의 푸짐한 반찬과 곁들여 따라 나온 된장찌개가 일품이다. 상추쌈에 소주 한잔. 젓가락 부딪치며 거나해지다 이젠 불판에 공깃밥 두 공기를 버무려보기로 한다. 김치에 쪽파김치, 파절이 남은 거며 깻잎 송송 가위로 잘라 뿌리고 현란하게 비벼본다. 내가 먼저 한 숟갈을 맛을 보는데, 살다 살다 이런 맛은 처음 아닐까? 맛나다. 여러 가지 행복도 있지만 먹는 즐거움이 으뜸이라.

 

벗들이여, 이 맛을 잊을 수 없어 전하느니. 해거름 어스름 출출하시면 종로3가 익선동 골목으로 오시라. 더불어 삼겹살에 소주 한잔 얼마나 절조 있는 삶이겠는가. 

 

우리네 한 생을 산다는 것은 꿈을 꾸는 것과 같다. 한 생을 살면서 호쾌하게 웃을 날 며칠이며, 돌아온 길을 흐뭇하게 반추할 일 또한 그리 많지 않은 일이다. 믿을 사람 하나 없는 지구별 낯선 거리를 헤매다 문득 허기지고 목이 마르면 허름한 익선동 어스름 삼겹살에 모이는 저 실루엣 같은 이웃들. 거리에 흘러넘치는 저 많은 젊은이와 중년의 그림자들이 익선동 좌판에서 삼겹살을 굽고 소주를 기울이는 갑진년 춘삼월의 한순간, 문득 시계를 보니 바야흐로 술이 술을 부르는 술시 아니던가. 내 사랑하는 벗님, 술 한 잔 받으시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