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경대
화경대
  • 김행철
  • 승인 2004.10.11 00:20
  • 호수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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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경대

그저 격세지감 정도로?


흔히 ‘서슬 퍼렇던 시대’라고 표현되는 유신독재시절에 대학을 다녔었다. 정권의 서슬이 너무나 시퍼렇기 때문에, 사형당할 각오쯤 이미하고 나섰던 극히 부분적인 ‘민주투사’들만이 고맙게도 국민들의 뜻을 목숨 걸고 대변하고 있었고, 대부분의 민초들이야 학원과 사회 군데군데에 침투해 있던 경찰 눈치보랴, 중앙정보부 감시받으랴, 보안사에 끌려 갈랴 겁에들 질려서, 친구끼리 모여 앉은 술자리에서조차 감히 ‘박정희’ 감히‘유신정권’ 입에도 담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서슬 시퍼렇던 유신독재체제는, 대부분의 민초들이 볼 때, 언제 끝날지 예상할 수 없는 것이었고, 일제시대의 독립투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극히 일부분의 민주투사들만이 꼭꼭 숨어서 부르짖고 덤벼들을 뿐이었었다.
일제시대 독립투사들의 투쟁목적이 ‘조국의 독립’이었다면, 유신시대와 그 아류의 시대에 있어서 민주투사들의 투쟁목적은 ‘조국의 통일과 민주화’ 두가지 명제에 있었는데, 이들을 옭아맨 올가미가 바로‘긴급조치’와 ‘국가보안법’이었던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역사는 흘러가는 것, 그러면서 변화해 가는 것이 틀림없는가 보다. 당연히 우리나라의 현대사도 박정희의 죽음과 전두환의 등장, 김영삼의 야합, 김대중의 부활로 이어지는가 했더니,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큼 놀랍게 등장한 노무현 대통령의 시대가 펼쳐져 있다.
근데 이것을 신기하다고 표현해야 하나 이상하다고 표현해야 하나? 어느날 신문을 보다가 퍼뜩! 세상이 뒤집혀 있어도 한참을 뒤집혀 있다는 것을 느끼고는 이거 내가 ‘거꾸로 나라’에라도 와있나 싶어서 겁나게 놀래버렸다. 아니? 내가 살아오면서 봐온 습관적인 그림으로 볼 때는, 야당지도자를 포함한 민주투사들께서 목숨걸고 국가보안법을 철폐하자고 덤벼들어야 그림이 맞는 것이고,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와 여당은 공권력투입이니, 그것으로 안되면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국가보안법 철폐하자는 놈들을 잡아들이라고 서슬이 퍼렇게 되어 있어야 그림이 맞는 것인데, 웬걸…….
나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빼앗아서 식민지로 만들 었던 삼십몇년간의 시대를 직접 겪어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직접 겪은 어른들로부터 들은 이야기와, 직접 겪은 지식인들이 써 놓은 글과, 조금은 왜곡되긴 했으나 그래도 상세하게 저술된 여러 역사교과서들을 통해 과연 그 시대가 어떤 시대였다는 것은 소상히 알고 있다. 한국현대사 최대의 비극은 그 아팠던 일제시대를 깨끗이 청산하지 못했던데서 출발한다. 일제에 빌붙어서 같은 민족의 피를 빨아 입신하고 먹고 살았던 사람들은 대단히 죄송하지마는, 식민시대가 끝남과 동시에 어떻게든 처단되었어야 했다. 유신시대, 군사독재시대에 그 정권에 빌붙어서 입신하고 축재했던 사람들 역시 그 시대의 종식과 함께 깨끗이 청산되어야 했었다. 그러나 역대정권 누구도 그 작업에 감히 손을 대지 못하다가 지금의 노무현 대통령이 늦게나마 청산하자고 덤비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경제? 나라의 경제가 엉망인데 왜 새삼스레 국가보안법 가지고 난리냐고? 그것이 백성의 밥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백성들은 조금은 굶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지금 배는 조금 고프더라도, 청산할 것은 청산해야 나중에 더 많은 밥을 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투덜거려서는 안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청산할 것은 바로 지금 과감히 청산해야 한다. 비록 당분간 배는 고플지라도 그래야 역사 앞에 당당해질 것이다.
김행철 <케이써치코리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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