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묵처방 - 이 기 식 교수
백묵처방 - 이 기 식 교수
  • 이기식
  • 승인 2005.03.15 00:20
  • 호수 1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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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 식 교수
<전기전자컴퓨터 공학부>

인정(認定)과 존경

사람은 누구나 이런저런 관계 속에서 희로애락을 느끼며 평생을 살아간다. 직업이 대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인 나는 그 중에서도 특히 사제지간이란 명목으로 일반인에 비해 월등 다양하고 많은 인간관계를 형성하며 살아가는 셈인데, 근자들어 이런 사제지간에 대한 나의 화두는 단연 인정과 존경이다.
즉, 나는 요즘 주변의 동년배와 학생들과의 대화에서‘인정’과 ‘존경’이란 덕담을 많이 하는 편인데, 여기서 말하는‘인정(認定)’이란 주로 제자나 또래의 젊은이에게 쓰는 행동지침으로 장래의 성공을 원하는 젊은이라면 모름지기 자신의 재능과 실력을 그 분야의 전문가와 실력자로부터 더 많은 ‘인정’을 받도록 노력하라는 것이고, 반면‘존경’이란 단어는 나와 동년배의 친구 또는 동료들에게 하는 말로 사람은 지위가 올라가고 나이가 들수록 되도록 독선과 아집을 버리고 아랫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 되도록 애쓰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사적인 얘기지만 나 자신 이런 연령별 행동지침과 덕목은 입과 마음속으로 술술 외우면서도, 막상 현실에서는 좀체 언행일치가 되질 않고 있어 스스로 민망할 때가 많은데, 신체적 나이는 비록 반백을 넘었지만 직업상 늘 풋풋한 젊은이들과 섞여 지내다보니 마음의 나이는 아직도 이삼십 대의 언저리에 머물 때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돌이켜보면 청년교수 시절에 나는 대학교수라는 직업에 대해 매우 편협하고 경직된 개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당시만 해도 나는 대학은 국가에서 행하는 의무교육기관이 아니라 대학생 개개인이 각자의 필요에 따라 수업료를 지불하고 교수들로부터 전문지식을 배우는 고급학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교수와 학생 간에는 전문적지식과 학문교류가 우선인 것이지 이외 별도의 인간관계정립에 필요한 요소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별 관심과 역점을 두지 않았었다.
따라서 아직 학구열이 한참 드높았던 청년교수시절에는 이러한 직업의식에 철두철미했던 탓에, 공부이외의 일로 교수실을 찾아오는 학생들의 방문이 오히려 달갑지 않았고 일년 열두 달 연구에만 매달려 지내느라 학생들과의 관계개선이나 존경심 같은 것을 기대할 겨를조차 없었다.
하지만, 나 스스로 보기에도 그렇게나 대하기 어렵고 깐깐하며 융통성 없는 교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느덧 교단경력이 쌓이다 보니 학부 또는 석박사를 마치고 취업했던 졸업생들이 직업현장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을 들고 나를 찾아오는 경우가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했고, 어떤 졸업생은 회사의 프로젝트를 의뢰해오기도 하고, 또 다른 학생들은 별 다른 일이 없더라도 종종 연구실로 찾아와 인사를 하고 가는 일이 잦아졌다.
내가 굳이 청하지 않았어도 학문을 매체로 은연중에 생겨난 사제지간이란 인간관계의 형성인 것이다.
그래서 오로지 전공지식의 전수와 습득만을 대학교육의 최우선 당면과제로 알고 있던 나였지만 그런 졸업생들을 만날 때면 다른 어떤 때보다 교수라는 내 직업에 대하여 자긍심을 느끼며 반갑고 기쁘며 재충전을 하게 되었는바 , 이유는 비록 지극한 존경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내 강의를 듣고 사회로 진출한 졸업생들이 어느 순간 진정으로 나를 자신들의 은사이자 전문가로서 인정하고 대우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사람은 어느 누구도 사회적 동물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이기에 세상살이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정립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하겠는데, 인생을 보다 윤택하고 살맛나게 하는 좋은 관계정립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타인과의 상호인정과 존중의 요소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것인 바, 위와 같은 나 개인의 경험으로 비추어볼 때 이미 자신의 신분에 대하여 더 이상의 객관적 인정이 필요 없다할 나이 지긋한 노교수의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 옛 제자들로부터 은사로 인정받는 기분이 매번 새삼스럽고 고무되는 걸 보면, 무릇 인생선배인 스승으로부터 인정받는 제자와 인생 후배인 제자로부터 존경받는 스승이야말로 모든 인간관계의 기본요건이며 이상형이 아닌가 한다.
모름지기 사람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스스로의 자긍심과 함께 타인으로부터 합당한 인정과 존경을 받을 때 가장 행복하고 균형 잡힌 삶을 살고 있다고 할 것이다.

바로잡습니다
탁승호 교수의 지난호(1139호) 백묵처방 본문 내용 중 ‘?’자형 인재를 ‘+’자형 인재로 정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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