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묵처방 / 서로를 격려하고 칭찬하는 마음으로
백묵처방 / 서로를 격려하고 칭찬하는 마음으로
  • 정재철
  • 승인 2005.03.24 00:20
  • 호수 11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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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재 철 교수
<언론영상학부·언론홍보학 전공>

새봄이 왔다. 난 일년 중 이맘때를 가장 좋아한다. 집안 베란다에서 기르는 매실과 미니 라일락 나무에서 새싹이 돋기 시작하고 장미도 벌써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 추웠던 겨울을 견디고 봄기운에 맞춰 몸에 두드러기 돋는 것처럼 굳은 가지 사이로 새싹을 튀어내는 꽃나무들이 경이롭다. 그래서 난 요즘,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베란다에 나가 꽃나무들의 새순이 얼마나 돋아났는지를 살펴보는 것을 하루 일과 중 가장 큰 낙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봄소식처럼 한 통의 반가운 안부 메일을 받았다. 지혜로부터다. 올 겨울 우리학교 언론영상학부를 졸업한 졸업생이다. 그러잖아도, 졸업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었는데, 고향인 밀양에 내려가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길지혜. 나는 지혜가 우리 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동안 길지혜를 농담 반 진담 반 ‘길기자’라고 부르곤 했다. 사실 지혜는 우리학교 대학 신문사 기자로 오랫동안 활약했고 3학년 무렵부터는 편집장을 지내면서 학교 신문에 한껏 필력을 뽐내곤 했던 학생이었다.
지난 몇 년간 지혜가 단대 신문에 연재하는 르포 기사들을 읽으면서 나는 여러 번 감동받곤 했었고, 그럴 때 마다 나는 내가 단국대학교에서 지혜와 같은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으로 재직하고 있다는 것에 큰 자긍심을 느끼곤 했다. 그런 지혜의 글재주를 몇 년 전 나는 이 백묵처방란에 스치듯 아주 짧게 기술한 적이 있다. 길지혜는 그런 내가 무척 인상 깊었던지 이번에 보내온 안부 메일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제자 길지혜 인사드립니다. 졸업 후, 4년간 서울에 마련해놨던 살림은 모두 우리대학 신입생에게 물려주고 고향 밀양에 내려 와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유학 가게 되면, 향후 몇 년간 얼굴도 제대로 못 볼 것이라 아쉬워하는 부모님의 말씀대로 못 이긴 척 내려오게 됐습니다. 부산을 왕래하며 영어공부를 하고 있고요. 교수님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만나 뵈어 맛있는 점심 한 끼 대접 못해 드리는 게 아쉬울 뿐입니다. 저는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백묵처방에 제자 이름을 써주신 교수님이 유일 무이 하다는 거 아시는지요. 정재철 교수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메일을 읽으면서 나는, 그래 내가 지혜가 학교생활 하는 동안 특별히 별다른 것을 해준 것도 없고, 수업 외에 학교에서 내가 뭐 그리 대단한 지식을 전수해 준 것도 없는 것 같은데, 그저 말이라도 고맙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와 같은 지혜 메일의 경우는 선생으로서 대학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내게 큰 격려와 자극이 되어주고, 교직에 봉직하는 선생으로서의 책임감에 다시 한번 옷깃을 여미게 된다.
그러나 학교생활에서는 종종 지혜 메일과는 정반대되는 오욕스런 글을 대면하게 될 때도 있다. 한 학기를 끝내고 익명을 바탕으로 써내는 학생들의 강의 평가의 글을 읽을 때이다. 대부분 많은 학생들은 진지하게 강의평가를 하고 나름대로 강의 전반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의 글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나는 강의 평가에 관련된 여러 가지 지수들을 꼼꼼히 훑어보고 학생들이 올린 글들을 진지하게 읽어 본다. 사실, 다음 학기를 준비하는 선생으로서도 학생들이 올린 글에서 때론 내가 깨닫지 못했던 학생들의 새로운 시각을 발견하게 될 때도 있고, 오랜 시간을 대학 강단에 서오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부분적으로 미숙한 강의 기법을 지적하는 글들을 보면서, 나는 다음 강의를 새롭게 준비할 각오를 다지곤 한다. 그러나 때론 몰이해와 편견에 가득 찬 근거 없는 오욕스런 글을, 인터넷 카페 게시판에 익명성을 담보 삼아 배설하듯이 올리는 학생들의 경우도 있어 참담함을 경험하기도 한다.
앞서 예시했던 것처럼, 교수님들도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학생들의 정겨운 격려와 칭찬 한마디가 학생들을 더욱 사랑하게 만드는 좋은 자극제가 되고 학교생활을 하는데 마음의 큰 버팀목이 되어준다. 그러나 근거 없는 독설로 한 학기 동안 자신을 가르쳐온 선생을 익명으로 모독하는 학생들은,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 재학하고 있는 학교를 스스로 모욕하는 일이며, 교수님들의 열정을 떨어뜨리는 행위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대학 생활에서의 학생과 교수 사이 서로간의 따뜻한 관심과 격려는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일방향적인 것이 아니라 쌍방향적인 것이고, 그것은 돈들이지 않으면서도 대학교육의 질을 높이는 가장 인간적인 길이 될 것이다.
봄날, 봄빛이 대지의 찬 기운 속에서도 따사롭게 느껴지는 날, 연구실 창문의 차양을 높이 걷어 올리고 봄 햇살을 한껏 맞으면서, 대학에서의 교수와 학생 사이 따뜻한 상호간의 소통과 격려와 대해 길지혜를 소재로, 그리고 강의 평가를 소재로 한번 다시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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