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볼펜 / 낯설게 하기
백색볼펜 / 낯설게 하기
  • 취재부
  • 승인 2005.03.24 00:20
  • 호수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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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작곡가 존 케이지는 1952년 ‘4분 33초’라는 제목으로 침묵의 음악을 작곡했고, 프랑스 미술가 마르셀 뒤샹은 1917년 사기로 만들어진 남성용 변기를 거꾸로 해놓고 ‘샘(Fountain)’이라는 제목을 붙여 미술관에 전시했다. 우리나라의 황지우 시인은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라는 시집에서 벽보에서나 볼 법한 문구들을 시라는 이름으로 시집에 실었다. 당시로서는 센세이션을 일으킬 만큼 파격적인 작품들이었지만 현대에 와서 이들의 작품은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정신의 최고봉에 올라있다.
△ ‘낯설게 하기(defamiliariz- ation)’는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된 용어로서 일상화되어 있는 우리의 지각이나 인식의 틀을 깨고 사물의 모습을 낯설게 하여 사물에게 본래의 모습을 찾아 주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조금 더 쉽게 말하자면 매너리즘에 빠진 주변의 친숙한 것들을 깨부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존 케이지의 음악와 마르셀 뒤샹의 작품, 그리고 황지우의 시를 예로 들 수 있겠다.
△ 현대의 대중은 새로운 것을 추구하면서도 익숙함 속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우리는‘개그콘서트’와 ‘웃찾사’에 열광한다. 캐릭터의 숙지와 진행 틀에 대한 반복적 학습을 통해 시청자(관객)는 다음 순서를 예측할 수 있다는 안도감 속에서 마음놓고 웃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익숙한 것들 사이에서야 비로소 안정감을 찾는다.
△ 패러디나 리메이크는 익숙하기에 이해하기 쉽지만 낯설게 하는 문화는 소비자를 긴장시킨다. 1년을 주기로 살았던 농경사회와는 달리 하루를 주기로 사는 현대사회에서 현대인은 약간의 긴장감도 참지 못한다. 긴장감 없는 익숙함 속에서는 창의적일 수도, 발전적일 수도 없다. 그리하여 감히 젊은 벗들에게 고한다. 낯선 것을 두려워하지 말기를 바란다. 익숙한 것들을 깨뜨려 낯설게 하라. 낯선 것에 도전하고 그 도전을 발판 삼아 발전하라.
<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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