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묵처방 / 스승은 남보다 많이 비울 줄 아는 사람
백묵처방 / 스승은 남보다 많이 비울 줄 아는 사람
  • 윤채근
  • 승인 2005.05.17 00:20
  • 호수 11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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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채 근 교수
<사범대 한문교육과>

조선 시대 반골들은 마포 나루 어름인 서강 쪽에 몰려 살았다. 반골 중에 반골은 아마도 수락산의 김시습이었을 터인데, 김시습을 동경했던 서강의 은자 남효온도 반골 기질이라면 만만치가 않았다. 힘 있다고 재는 놈들이라면 서슴치 않고 독설을 퍼부었고 제 깜냥 모르고 설치는 족속들을 짐승 취급했다. 시대의 반항아였던 그가 남긴 글에 <육신전>이 있다. 사육신의 생애를 요약한 감동적인 명문이다.
1994년 대학 교단에 첫 발을 디디고 <육신전>을 강의했다. 당시 20대 후반의 열혈 청년이었던 필자는 밤에는 용맹하게 술을 마시고 낮에는 한적을 강독했었다. 나름으론 제 자신 강단 있는 먹물이라고 여겨 <육신전>을 읽으며 그 때의 시국을 맹성토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문제는 성삼문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아무래도 성삼문에 대한 남효온의 기록이 수상쩍었다. 앉고 눕고 하는 것이 범절이 없었고 시금털털한 육담이나 즐겼다니. 필자가 머릿속에 그리던 그 성삼문이 아니지 않은가.
그 이후로 평균 3년마다 한 번씩은 <육신전>을 강의하게 되었는데 성삼문의 인격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어느 시인과 박수근 그림을 같이 보게 되었고 그의 로맨스에 대해 듣게 되었다. 삶을 인내하고 견디는 방식은 참으로 많은 법이었다. 검을 들어야 투사는 아니고 화를 내야만 지사는 아니다. 박수근은 붓 하나로 한 시대를 격렬하게 부대꼈고 부드러움 속에 강력한 무장을 하고 버텼던 게다. 그렇다! 사랑은 자기를 버리는 순간 찾아오는 것이로구나. 그렇게 무언가를 깨달았다.
남효온은 성삼문에 대해 진솔하게 기록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는다. 성삼문은 농담 좋아하고 벗들에게 치근대며 술도 꽤 했을 것이다. 아무렇게나 앉고 기분 오르면 선배한테 반말도 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근엄한 선비들이 보면 눈살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으리라. 하지만 그런 인격이 위기에 강하다. 자기를 우스운 놈으로 만들 줄 아는 관대함이, 삶을 툭 던지고 뭉갤 줄 아는 유머 감각이 삶을 송두리째 비워내면서까지 대의에 목숨을 걸도록 해 주는 것이다. 그렇게 깨닫고 보니 유독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나도 괜찮은 놈이라는 즐거운 각성을 하게 되었다.

성삼문의 유쾌함은 타인을 향한 개방이었다. 자기를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은 용의주도하고 음험하며 센티멘탈하다. 그의 관심은 대부분 온통 자기 자신, 자기 가족에게만 집중되어 있다. 그의 머리는 활기차게 회전하지만 결코 자아를 놓지는 않는다. 그래서 늘 피곤하다. 피곤한 사람이 어떻게 남을 웃길 수 있겠는가. 어떻게 일상의 행복을 배려할 수 있겠는가. 때문에 진지하고 심각한 사람은 믿기가 어렵다. 그런 부류는 타인까지 지치게 하고 삶을 어둡게 하며 결국은 꼬리를 내릴 거면서 이념을 선동한다. 그런 인격은 결정적인 순간에는 발을 뺀다.
불혹까지 세상을 겪어오면서 제법 많은 사람들과 술을 마셨고 적지 않게 끝까지 가봤다. 폭력적인 사람일수록 남의 말을 듣지 않고 남이 자신을 웃겨주기만을 기다린다. 관망하며 지배하고 스스로의 지위를 악용하기도 한다. 술자리에서 말이 많고 단적으로 시답지 않아 보이는 어수룩한 친구들이 마지막에 내 등을 토닥여주곤 했다. 너무 고마워서 손을 잡았던 그 친구들은 세상에 빛을 내며 유명해지지는 않았지만 그 어느 곳에서건 늘 마지막까지 남아 누군가의 어깨를 부축해 줄 존재들이다.
한문학 전공자들이 입만 열면 떠드는 말에 ‘학문은 자기를 위해 하는 것이지 남을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경구가 있다. <논어>에 나오는 말씀이다. 필자는 아직도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있다. 아마도 배움의 주체성, 자발성을 강조하는 말 같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학문은 결국 남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소중한 자기를 일구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행위 자체가 필경 누군가를 즐겁게 하는 것, 바로 그것이라고.
자기만을 너무도 아끼고 사랑하여 정신적, 육체적으로 치장하기 바쁜 사람들이 많다.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고자 빈틈을 주지 않고 자기가 유리할 때만 향유하려고 드는 그 숱한 불행한 사람들의 얼굴에서 나치를 보곤 한다. 자기를 사랑하면 고독해지고 고독하므로 일을 도모하고 일을 통해 지배하고자 하니까. 그래서 타인을 억압하는 것이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은 지독한 자기애주의자다.
남효온이 본 성삼문을 회고할 때마다 스스로를 반성한다. 자아를 놓을 줄 모르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없다. 스승은 남보다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며 남보다 많이 비울 줄 아는 사람이다. 무언가로 가득 찬 그릇 속에서는 사랑이 뿌리내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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