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경대 / 사라지는 교단에 대한 아쉬움
화경대 / 사라지는 교단에 대한 아쉬움
  • 김일수
  • 승인 2005.09.06 00:20
  • 호수 11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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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수시 철을 맞아 고등학교를 방문해서 대학을 소개하는 말하자면 입시홍보를 하며 다닌다. 안면이라도 트고 지내는 교사가 있는 학교라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조금 여유를 부릴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학교에서는 정해진 시간 안에 설명회를 마치고 부리나케 나와야 한다. 그런 내 처지가 참으로 옹색하기 짝이 없다. 그런 와중에도 볼 것은 다보여서 요즘 교실이 예전과는 다르게 참 많이 변했구나하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고3 교실에는 한 귀퉁이에 놓인 텔레비전을 향해 수능 대비 방송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는 학생도 있고 참고서나 문제집을 펴놓고 자기가 공부하고 싶은 과목을 열심히 들여다보는 학생도 있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일부 학생은 책상에 엎드려 세상 편하게 수면을 취하는 모습도 있다.
그런데 눈에 확 띄게 달라진 모습은 교실에 교단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학교가 다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내가 본 일부 학교에서 그렇다는 것인데, 궁금해서 교사에게 물어보니 요즘 점차 그런 교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큰 변화인가! 예전 선생님들은 교단이 하나의 무대였다. 교실바닥보다는 높은 곳인지라 학생들의 수업태도를 관찰하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 더욱이 학생보다 키 작은 선생님을 돋보이게 하고, 풋내기 교사의 위엄을 도우는 것이 교단이요, 학생들이 선생님을 넘보지 못하는 교권의 솟대역할을 하는 것이 교단이다. 그러니까 교단은 일종의 성역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런 교단이 교실에서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정말 뜻밖의 소식이다. 교단이 왜 없어지는 것일까. 30대 이상의 성인들 치고 교단이 없어지리라고 상상해본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참으로 궁금한 일이다. 이유인 즉, 첨단 학습기자재인 OHP 필름이 등장하면서라고 한다. 최근에 와서 급속하게 보급된 실물 화상기와 이동식 칠판은 교단의 종말을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기자재들은 교사들이 교단에 올라서서 갖가지 색깔의 분필로 칠판을 장식하던 수고를 덜어주고 있다.
나는 교단과 관련하여 몇 가지 추억을 갖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선생님이 산수 문제를 쭉 써놓으시고 번호순대로 다섯 명씩 교단에 올라가 풀라고 하셨는데, 나는 그만 틀리고 말았다. 나의 수학기피증, 아니 공포증은 아마도 그때부터가 아닌가 싶다. 고교 1때, 담임선생님은 평소 운동화를 신고 다니셨다. 젊은 분이라 의욕과 활기가 넘치는 선생님이셨다. 조금 늦을라치면 열심히 달려서 학교에 출근하시는 분이셨다. 당신이 그러하니 가장 싫어하는 게 우리들의 지각이었다. 지각생들은 교단 위에 일렬로 서있게 된다. 난 자주는 아니지만 간혹 지각을 하기도 해서 교단 위 활극(?)에서 연기를 펼치는 출연자 명단에 끼기도 했다. 옛날에는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체벌을 가하는 것이 예사였다. 물론 학생들이 맞을(?) 짓을 자주 했기 때문일 것인데, 그 맞을 짓의 단골메뉴가 지각이었다. 교단 밖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지키느라 몸을 엔간히 혹사시키기도 했다. 교단 밑으로 내려서면 반항이라나 뭐라나 해서. 교단에서 날아오는 분필을 순발력 있게 피하던 학창시절이 아련하기만 하다.
평생을 선생님으로 지냈던 사람들은 교단이 없어진다는 소식이 큰 아쉬움으로 다가올 것 같다. 우리들이 교직자의 의미로 쓰고 있는 “교단에 서다”라는 말도 사라지지 않을까.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숱한 추억거리가 새겨져 있는 교단. 디지털 세상이 우리들로부터 또 하나의 아날로그 추억을 앗아가고 있다고 해야 할 모양이다.
김일수<공주영상대학> 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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