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경대 / 진정 그대가 원하신다면…
화경대 / 진정 그대가 원하신다면…
  • 남정식
  • 승인 2005.09.13 00:20
  • 호수 11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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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진정성이라는 말이 화제가 되는 모양이다. 친구나 연인사이에서는 물론이고 사업 등 이해가 갈리는 관계에서도 흔하게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내 말이 진심이니 의심하지 말고 믿어달라는 뜻의 표현이겠지만 자주 사용해선 곤란한 진정이라는 말이 당초 의미와 달리 장난스레 남발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진정성이란 말이 이렇게 대중화(?) 된 것은 노무현대통령의 연정제안 발언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은 야당인 한나라당을 향해 여러 차례 강도를 높여가며 연정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 말미엔 늘 내 말은 진정이라고 강조했다. 안하겠다는 상대에 대해 진정성을 앞세워 자신의 제안을 수용하라고 압박한 셈이다.
이를 두고 한나라당은 물론이고 일부 시민단체까지 스토커수준이라고 평가를 절하 했다. 물론 진정이라는 말의 의미도 반감됐다.
대통령이 말한 진정이 한자로 ‘眞正’인지 ‘眞情’인지 ‘陳情’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사전적 풀이대로 거짓이 없다, 진실한 사정이다, 실정을 털어놓는다는 뜻이 모두 포함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선의의 뜻을 상대에게 압박하듯 요구하는 것은 예의에도 맞지 않고 제안의 진실성도 의심 받는다. 당연히 연정에 정치적 음모가 없다는 대통령의 설명도 신뢰성이 떨어진다. 더욱이 여당인 열린우리당에서 조차 일부는 그 진위를 의문시하며 진정이라는 대통령의 ‘다음 수’를 지켜보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 때문에 연정과 진정성에 그토록 집착하는 것일까?
사실 노대통령은 정국 흐름에 대한 대응 타이밍이 빠르고 이를 구체화하는 명분 설정이 능하다. 구 정치 청산을 내세워 3당 합당을 거부하기도 했고 의원직 사퇴서를 내기도 했다.
낙선이 예상되는 부산에서의 출마도 그중 한가지다. 과거 그의 정치행보를 보면 명분을 중시하는 성향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이번에도 그는 지역구도 타파를 명분으로 연정을 강행하려 한다. 지역주의는 우리사회 전반의 발전을 가로막는 오래된 고질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를 그는 절묘하게 포착해 내세움으로서 반대의 명분을 차단하려는 것이다.
지역주의 해소가 대통령의 진정한 목표라면 연정을 무리하게 추진해서는 안 된다. 이미 나온 분석이지만 연정이 지역 구도를 깨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라는 점은 알려졌다.
다행히 당분간 연정얘기를 않겠다고 했으니 진정성에 대한 논란도 수그러들겠다. 하지만 당분간이라는 전제는 언젠간 다시 하겠다는 의미이니 차후에 나올 그의 ‘다음 수’에 의심의 눈길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진정 그대가 원하신다면…’이라는 노랫말이 생각난다. 진정성이란 말은 나를 믿어달라는 강요보다는 상대가 원하는 것을 받아 들이는 것에 더 의미가 있다.
상대를 비난하면서 한편으론 악수를 하자고 하면 아무도 그 진정성을 믿지 않는다.

남정식<국민일보 편집국 부국장> 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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