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경대 / 어떤 친구
화경대 / 어떤 친구
  • 유인식
  • 승인 2005.10.04 00:20
  • 호수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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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친구

이런 친구가 있다. 고교 동창으로 졸업 후에도 줄곧 서로 연락을 했고 가끔 만나서 흉허물 없이 터놓고 가정사까지 미주알고주알 해대는 사이니까 ‘친구’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 친구는 소위 ‘뻥쟁이’다. 그 친구가 어떤 일을 성사시켜 지금 본 궤도에 올랐다고 얘기하면 이제 막 그 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얘기고, 사업이 잘 풀려서 올해 매출을 얼마 올렸다고 자랑하면 이제 막 그럴 계획으로 사업에 손을 댔다는 식이다.
이 녀석은 직업도 수시로 바꾼다. 그만큼 능력도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교대를 나와서 초등학교 교사로 10년 정도 있으면서 소위 ‘교육운동’도 열심히 하다가 어느 날 교직에서 뛰쳐나가더니 출판사 편집장, 건설회사 홍보팀장, 앨범 사업자 등을 거쳐, 이동통신사업에 몸담다가 요즘엔 농사일을 배우겠다고 야단이다. 한 마디로 도깨비 같은 녀석이다. 그래도 필자와는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서 녀석이 무슨 말을 하면 ‘아, 그렇겠구나’하고 받아넘기지만 어쩌다 뜸하게 만나는 사람의 경우, 열이면 열 다 녀석의 ‘뻥’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된다. 마치 사기 당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한번은 그 친구의 대학 동창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 도깨비 친구의 연락처를 아무리 수소문해도 모르겠는데, 누군가 필자에게 연락하면 알 거라고 귀띔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은 전화번호도 수시로 바꾼다.
<탈무드>에 나오는 유명한 ‘세 친구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왕의 재판정에 출두하라는 편지를 받은 사람이 그곳에 가면 틀림없이 무슨 벌을 받을 거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변호할 세 친구에게 함께 가자고 했단다. 먼저 평소 자신이 제일 가깝게 지내는 친구에게 부탁했더니 바쁘다는 핑계로 거절당했고, 두 번째로 믿을 만한 친구는 대궐 앞에까지는 갈 수 있다고 했단다. 그런데 그저 알고 지내는 정도의 세 번째 친구는 웃으면서 “좋아, 함께 가 주지. 자네에게 잘못이 없다는 것을 내가 잘 알고 있으니 왕에게 가서 자네의 결백을 변호해 주겠네”하면서 선뜻 나섰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첫 번째 친구는 재물, 두 번째 친구는 가족, 세 번째 친구는 사랑을 비유한다고 한다. 사랑에는 희생과 아픔이 동반되기 때문에 평소에는 달가와하지 않지만, 이 사랑만이 진정한 친구라는 내용이다.
요즘 모 TV의 친구 찾기 프로그램이 인기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추억에 젖어 옛 친구를 떠올리게 되고, 각박한 요즘 세상에 더없이 ‘사람의 정’을 그리워하게 된다는 것이다. 더구나 TV 속 연예인이 특별한 개인이라기보다는 희로애락에 젖어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 주변 사람과 같다는 생각 때문에 동질감을 느껴 그들이 찾은 친구를 마치 자신이 찾은 친구인 양 대리만족을 맛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친구를 찾았을 때 자막으로 내 보내는 ‘친구 관련 명언’이 가슴에 와 닿는다는 것이다.
그와 관련하여 두어 개 문장을 떠올려 본다. “우정이란 성장이 더딘 식물이다. 그것이 우정이라고 불릴 만한 가치가 있게 되기까지는 몇 번이고 어려운 충격을 받고 또 그것에 견디어 내지 않으면 안 된다.-워싱턴”, “한 친구를 얻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잃는 데는 잠시이다. -릴리”, “친구를 얻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완전한 친구가 되는 것이다. -에머슨”
필자의 그 도깨비 같은 친구가 다음 주말에 매운 고추를 따가지고 상경한다고 연락이 왔다. 그 매운 고추를 반찬으로 오랜만에 친구와 저녁을 먹으며 ‘사는 얘기’를 하고 싶다. 유인식<교사> 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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