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경대-외상이면 소도 잡아 먹는다
화경대-외상이면 소도 잡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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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4.11 00:20
  • 호수 1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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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추 이십 년 전 이야기다. 대학 부근 막걸리집 외상거래를 누가 먼저 트느냐로 폼 잡던 시절이 있었다. 중국집에 가서 돈이 없으면 학생증을 맡기던 추억도 있다. 뿐이랴 전당포에는 시계, 무슨 집에는 책가방, 또 어디는 만년필 등속에 이르기까지. 시골출신이면 하숙비 올라올 때까지 외상 튼 집을 피해 대학부근의 이러저러한 술집과 밥집을 순례하며 지냈다. 낮에 어쩌다 주인을 만날라치면 저녁에 다시 들러 기세좋게 먹고는 전엣 것에 엎어서 또 외상을 긋는다. 기가 차 하면서도 이런 치기가 통하기도 했다. 우리가 내밀던 그것들이 무슨 큰 담보 가치가 있었으랴... 방탕한(?) 대학시절이 무어랍시고 추억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 시절 우리들의 신용구매 규모란 고작 이런 정도였다.
전 세대들과 달리 풍요의 시대에 태어나고 자라서인지 요즘 젊은이들의 외상은 통이 크다. 이 통 큰 소비에 신용카드라는 물건이 한 몫 단단히 하는 모양이다. 이것만 있으면 외상 먹으면서도 면구스럽기는커녕 당당하기 짝이 없다. “외상이라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말이 옛날부터 내려오고 있는 것을 보면 외상의 매력은 시대를 초월하여 과소비를 부추겨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다가, 흔히 “카드를 긋는다”고 말하듯 신용카드는 사용이 아주 손쉽다. 돈 아쉬울 때는 카드로 빚까지 쉽게 얻을 수 있으니 흡사 도깨비 방망이다.
하지만 쓸 때는 도깨비 방망이 같아도 돈 갚을 요량 없이 쓰고 나면 무섭기 짝이 없는 것이 신용카드다. 카드 대출 이자는 은행보다도 훨씬 높고 연체이자 역시 고율이다. 빚을 빨리 갚지 않으면 눈덩이 구르듯 부담이 커진다. 밀린 카드 빚 갚으려고 강도에다 살인까지 저지르는 판국이다.
서울에서는 신용카드 빚 4천 500만원을 갚기 위해 옛 직장의 사장집에 들어가 사장부인과 아들을 흉기로 찔러 죽이고 돈을 훔쳐 달아난 20대가 체포되었다.
생각해 보자. 이것이 누구 탓인가. 신용카드 회사가 책임질 몫도 여기에는 포함돼 있다. 만일 신용카드 회사가 결제 능력 없는 사람에게 카드를 발급하지 않았더라면 강도나 살인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용카드 회사들의 경영난은 자업자득이다. 카드 발급 남발의 벌을 받게 된 것이다. 거리에서 행인들에게 신규 가입을 권유하고, 땡전 한푼 벌지 않는 젊은이들에게까지 발급할 때부터 사태는 예견된 것이었다. 신용을 따져 보지 않고 카드를 내 주는 회사는 어느 나라에도 없다. 국민 300만 명이 신용 불량자라는 사실, 또 그 5분의1 가량이 20대라는 사실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빚을 받아 내지 못하는 신용카드 회사들이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개인과 가정에 파탄이 오고 국가 경제에도 엄청난 악영향이 미친다. 상황이 절박해지자 대통령이 개인워크아웃제 확대 실시를 지시하기에 이른다. 신용카드 회사는 연회비와 수수료 따위를 또 인상한다.
개인워크아웃과 연회비 인상 등은 성실한 사람들의 돈으로 불성실한 사람(일부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에게 혜택을 준다는 점 때문에 논란이 되고 있다. 안 갚고 버티면 언젠가는 해결되리라는 생각을 지니게 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외상이라면 소도 잡아먹는 사람이 계속 나오고 연체자가 자꾸 늘어날 수 있다. 그러므로, 대상자 선정은 꼼꼼히 해야 한다.
젊은이들의 낭비벽이 심해지고 신용이 박탈되는 것은 가장 우려되는 사태다. 앞으로 카드 회사가 20대 신용 불량자 양산을 조장하는 일은 더더욱 없어야 한다. 대학생들에게 건전한 카드 사용을 위한 특강을 의뢰하면서 쓴맛이 고여 몇 자 적어 본다.
김일수<공주영상정보대>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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