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대신문 창간 60주년 기념 특별기획] 대한민국의 꿈과 도전사
[단대신문 창간 60주년 기념 특별기획] 대한민국의 꿈과 도전사
  • 장두식
  • 승인 2008.03.11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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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건국·한강의 기적·월드컵, 그리고 통일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응원구호는 대한민국이었다. 엇박자 박수소리에 맞춰 외치는 우렁찬 대한민국 소리가 한반도 전체를 하나로 만들었고, 대한민국이라는 국명은 전 세계로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코리아도 한국도 조선도 아닌 대한민국이란 구호! 온 국민이 거리로 뛰어나와 대한민국을 외치던 거리응원은 21세기 새롭게 정립된 우리의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지난 세기 우리는 우리의 이름을 스스로 부르지 못했다. 원래 우리 민족도 옴팔로스 증후군(omphalos syndrome)을 가지고 있었다. 환인의 아들인 환웅의 하강과 신시건국을 기록한 단군신화나 태양신 해모수의 아들 주몽의 탄생과 고구려 건국신화, 그리고 광개토대왕이 천제지자인 추모왕(주몽)의 적통임을 밝히고 있는 광개토대왕비를 살펴볼 때 우리민족이 다른 민족 못지않게 세계의 중심이란 사유가 강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세계사는 우리 민족을 중심으로 기록하지 않고 항상 변방으로 내몰거나 속방으로 만들어버렸다. 중국에 의해서, 서구에 의해서, 일본제국주의에 의해서 동이라는 오랑캐 취급을 받거나, 은둔의 나라인 조선이나 코리아로 호명되고 급기야 식민지 조선으로 재배치되었다.

 

조지훈 시인이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를 양이면 봉황새야 구천(九泉)에 호곡(呼哭)하리라”(<봉황수>)라고 노래할 수밖에 없는 굴절된 역사적 도정이었다. 해방 이후에도 6.25 전쟁과 분단 그리고 권위주의 정권의 정치적 파행 때문에 한동안 세계의 변방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현실에 좌절하거나 안주하지 않았다. 1960년 4·19혁명을 통하여 민주주의를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디뎠다. 신동문 시인은 이러한 발걸음을 “열씩/백씩/천씩 만씩/어깨 맞잡고/팔짱 맞끼고/공동의 희망을/태양처럼 불태우는/아! 새로운 신화같은/젊은 다비데 군들”(<아! 신화같은 다비데 군들>)이라고 노래했다. 후진국과 분단국이라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거대한 첫걸음이었다. 민족을 발견하고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운동이 민족 구성원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 시기 개발독재 정권에 의한 다양한 경제개발 정책이 효과를 나타나기 시작했다. 수출위주의 산업정책과 새마을운동과 같은 국민동원 정책으로 경제가 가파른 성장을 하게 된 것이다. 아직까지 개발독재 정권의 공과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지만, 1970년대 들어서 “한강의 기적”이라는 신화가 탄생을 하게 된 것이다.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과 같은 산업 인프라의 구축과 현대와 삼성과 같은 재벌기업들의 성장으로 원조경제 국가에서 자립경제 국가로 발전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1970년대 내내 고도경제 성장에 상응하는 정치적인 발전은 정지되어 있었고, 재벌위주의 경제정책에 의하여 계층 간의 갈등이 점점 격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사회는 신동엽 시인이 <종로 5가>에서 민중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거머리 마을로 노래하였듯이, 부익부 빈익빈의 구조적 모순이 점점 심화되는 사회였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라는 구호가 점점 공허해지기 시작했다.

민주주의의 정착 없이는 경제의 지속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성장이 파행적인 정치체제 때문에 점점 그 의미가 탈색되었다. 급기야 사회 각계의 민주화 운동과 개발독재 정권 내부의 갈등으로 10·26 정변이 일어나 개발독재 정권은 비극적인 종말을 고하였다. 신군부 세력에 의한 정권찬탈과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상징되는 1980년대는 정치적인 대격변기였다.

 

하지만 민주주의와 반민주주의의 대결과정에서 최후의 승자는 국민들이었다. 1987년 6월의 민주화운동과 7,8월의 노동자 총궐기에 의해서 민주주의 토대가 확립되었고, 그 후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라는 민간정부가 탄생하였고. 민주주의적인 절차에 의해서 현재의 이명박 정부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정치적으로는 대결의 시대였던 1980년대는 경제적으로는 지속적인 성장을 계속하여 신흥공업국으로 발돋움을 하였다. 또한 1988년 서울올림픽을 개최하여 세계 속에 한국의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코리아는 미지의 국가였다. ‘쎄올(서울)’은 알아도 코리아는 모른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당시 한국은 제 3세계 저개발국가와 같은 위치에 놓여 있었다. 서구의 몇몇 지식인들 사이에서 한국은 광주의 비극과 군사 독재국가라는 이미지로 읽혀지고 있었다. 아직까지 한국/코리아는 문명국이 아닌 야만국으로 호명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서구적 오리엔탈리즘의 영역에 안주하는 것을 거부하기 시작하였다. 경제적으로 IMF의 난국을 극복하고, OECD 가입과 국민소득 2만불 시대를 이루어냈다. IT 인프라 구축을 통해 정보화 사회로의 진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삼성, 현대, LG 등 한국의 대기업들은 세계 경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또한 대중문화 부분에서 욘사마와 같은 한류스타들을 배출하여 문화산업을 통한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다. 한국은 글로발리제이션 속에서 점점 국가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과의 관계도 냉전체제에서 탈피하여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을 개발 등 경제협력 관계로 전환하여 통일의 분위기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바탕 속에서 한국은 이제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 “대한민국”이라고.

이렇듯 2002년 한일월드컵 응원구호는 즉자적으로 탄생한 것이 아니었다. 타자들이 호명했던 한국/코리아를 거부하고 스스로 “대한민국”을 외치던 거리 응원! 지금 다시 떠올려보아도 가슴이 뜨거워진다. 21세기는 대한민국으로 시작하였다. 이제 한국/코리아의 꿈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꿈을 이야기해야 한다. 전 시대의 모순을 모두 다 겪으면서 여기까지 온 우리는 강대국들의 신패권주의와 오리엔탈리즘의 차별적인 담론을 극복하는 것을 일차적인 꿈으로 삼아야 한다.

미국과 유럽연합, 중국과 러시아, 일본 등 강대국들은 패권주의로 재무장을 하고, 국제간의 분쟁을 야기 시키고 있다. 특히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성장과 일본의 군사대국화는 우리의 생존에 커다란 위험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많은 미래학자들이 앞으로 세계의 중심은 동아시아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중국의 경제 성장을 근거로 나온 예측들이다. 13억 인구와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하는 중국의 경제는 서서히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어디를 가나 ‘메드 인 차이나’ 제품들이다.

우리의 기술력을 거의 따라온 중국은 이제 일본이 자신들의 경쟁상대라고 떠벌리고 있다. 한강의 기적은 이제 황하의 기적에 흡수되어 버리는 것 같은 상황이다. 일본 또한 이러한 중국의 급성장을 경계하며 군사적인 무장을 강화하고 있다. 두 나라의 패권주의는 곧바로 우리에게 위협이 된다.

결국 동아시아의 안정을 위해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 먼저 동아시아 연대를 구축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국과 일본 그리고 몽골과 중앙아시아의 연대를 경제와 문화부분에서 공고히 할 수 있는 아젠다와 로드맵을 수립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하지만, 동아시아 지역의 연대를 위한 보다 열린 민족주의를 지향해야 한다. 21세기는 적대적인 대결의 시대가 아니라 문화 간의 긴밀한 소통의 시대이다.

특히 동아시아에서 유럽연합과 같은 공동체를 구축해야 만이 동아시아 제국가들의 발전을 도모할 수가 있다. 이러한 지역주의는 지역 패권주의와 다르다. 우리시대에는 물자와 문화의 자유로운 소통과 교환이 없이는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지역주의는 지역공동체간의 동등한 대화 체제를 전제해야 한다. 또한 지역연대가 구축이 되면 한반도 통일을 위한 기반이 더욱 공고하게 다져질 수 있다. 우리의 통일을 위해서는 우리와 북한 간의 문제만이 아니라 한반도 주변국들 간의 이해관계도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역연대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문화적인 동질성을 찾는 작업을 먼저 선행해야 한다. 즉 동아시아 각국의 문화 속에서 동아시아적인 정체성을 도출하여 문화적인 연대의식을 강화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너와 내가 아니라 우리라는 의식은 문화적인 연대의식에서 비롯된다.

이를 위해 우리가 동아시아 문화교류의 허브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대중문화에서의 한류현상을 문화 전 부분의 한류로 심화 확대시키고, 동아시아 각국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동아시아 각국은 일본을 제외하고는 서구식 오리엔탈리즘의 피해국들이다. 이러한 연대 속에서 탈오리엔탈리즘 담론은 저절로 구축될 것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꿈은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인류를 위한 거대한 기획으로 발전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유엔평화유지군을 파견하여 분쟁지역의 평화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저개발국가에서 국가 차원이나 여러 단체들에 의한 구호활동이나 봉사활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하여 대한민국의 위상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아직도 부족하다.

우리가 인류역사에 기여하기 위한 실천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전개시켜 나가야 한다. 구텐베르크보다 80여년 앞서서 금속활자를 발명을 했지만 세계사에서 그 의의를 인정받지 못한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오리엔탈리즘적인 역사기술이라고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직지심체요절과 구텐베르크 금속활자의 역할을 살펴보면 기존 평가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종교개혁과 근대시민 혁명에서 구텐베르크 혁명이라는 담론이 나올 정도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는 엄청난 일을 해냈던 것이다. 이렇듯 이제 우리는 인류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실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아직까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가 나오지 않은 것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한국의 작가들이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수사에 현혹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민족과 더불어 인류의 보편적인 문제에 천착하는 작품만이 고전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노벨문학상은 하나의 단순한 사례일 뿐이다. 사상과 자연과학과 의학 등 현재의 패러다임을 뛰어넘는 업적들이 나와 인류역사 발전에 기여를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스스로 호명한 대한민국이 부끄럽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대한민국이란 이름을 스스럼없이 부르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일제 강점기와 건국과 그리고 정치적인 격동기를 거치면서 우리들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이름을 제대로 불러보지 못했다. 한국이라고 조그만 목소리로 발화하거나 타자들이 차별적으로 호명하던 코리아를 더 선호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당당하게 대한민국!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말하게 되었다. 대한민국이 세계 속의 대한민국으로 성장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의 시행착오를 극복해야 한다. 선진국이든 저개발국가이든 모두 동등하게 호명을 하여야 한다. 중국, 일본, 몽골, 이디오피아이, 볼리비아, 미국, 러시아, 유럽연합 모두 인간이 사는 나라들이고 그 나라 국민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다. 이 세계 속에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야 할 사람들인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은 이러한 행복을 방해하거나 짓밟는 모든 반인간적인 세력과 체제와 대결을 벌여야 한다. 건강한 꿈은 이루어지고 정의로운 도전은 성취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인류사의 철칙이다.

장두식(동양학연구소) 연구교수

장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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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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