⑮ 고흐의 '복숭아 꽃이 만발한 아를르 풍경'
⑮ 고흐의 '복숭아 꽃이 만발한 아를르 풍경'
  • 임두빈 교수
  • 승인 2008.04.01 16:31
  • 호수 12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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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그림은 삶에 대한 운명적 고백이자 처절한 영혼의 절규

고흐는 1853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37세의 나이로 정열적인 삶을 마친 화가다. 그가 화가로서 활동한 시기는 생애의 마지막 10년이라고 하는 지극히 짧은 기간이었다. 짧은 기간 동안 그는 혼신의 힘을 기울여 분출하는 열정을 그림을 그리는 데 쏟아부었다. 그의 그림은 미학적 탐색의 결과라기보다 그의 삶의 운명적인 고백이었으며 처절한 영혼의 절규였다. 힘차게 그어지는 짧은 색선들과 요동치는 원색의 자유 곡선들은 그의 전 존재 속에 깃들인 폭풍과 같은 영혼의 내적 드라마를 반영하고 있다.

그의 초기 화풍은 이른바 ‘네덜란드 시대’로 불리는 끈적끈적하고 투박한 채색의 암울하고 헐멋은 정조를 띠고 있었다. 이시기는 고흐 예술의 본격적인 개화를 위한 준비기였다고 할 수 있다, 고흐 예술의 참다운 독창성이 발아하기 시작한 것은 그가 프랑스에서 생활하면서부터였다. 여기서 그는 인상주의와 신인상주의 미술의 밝은 색채에 영향을 받고 ‘네덜란드 시대’의 어둡고 투박한 화풍에서 벗어나게 된다. 색채에 대한 관심이 그의 그림에 숨겨져 있던 감각성을 분출하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될 점은 고흐가 색채를 대하는 태도는 인상파 회화와는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인상파는 색채를 끊임없이 변화하고 유동하는 덧없는 세계의 순간적인 재현에 사용하고 있는 데 반해 그는 색채를 그 자신의 영혼과 정념을 표출하는 중요한 요소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이 같은 색채관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인간의 사상을 밝은 색조의 광휘에 의해 표현하는 것. …나는 붉은색과 녹색을 가지고 인간의 무서운 정념을 표현하려 했다.”

고흐의 예술은 파리에서 아를르로 오면서부터 자살로 생을 마치기까지의 3년간이 가장 뛰어난 창조적 독창성을 발휘했던 시기인데, 여기 소개하는 <복숭아꽃이 만발한 아를르 풍경>도 이때 그려진 것이다. 고흐는 아를르의 맑은 하늘과 신선한 대기, 그리고 아름다운 색채에 도취된 상태에서 이 그림을 그렸다. 여기에는 땅과 나무와 공기가 내뿜는 봄의 향기가 독특한 색채의 옷을 입고 힘차게 진동하고 있다. 이것은 인상파에서와 같이 한 순간에 변화하기 쉬운 풍경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충일성속에 포착된 풍경인 것이다.

▲ '복숭아 꽃이 만발한 아를르 풍경'
짧은 색선을 무수히 찍어 바르며 처리된 하늘은 희미하게나마 신인상파의 영향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지만 색채분할에 의한 붓자국에서보다 강화된 선묘는 전혀 다른 힘을 느끼게 한다. 특히 대지의 나무화 풀과 꽃과 집을 표현하는 데서 나타나는 견고한 물체감과 강도 높은 색체는 활기찬 붓터치와 어울려 고흐 특유의 내면적 힘을 지닌 풍경화를 창조하고 있다. 그것은 생성의 신비에 대한 상념과 환희에 찬 열정이 조형적 차원으로 전이되어 발산하는 힘인 것이다.

고흐의 작품은 이 그림 이후 더욱 독창적인 빛을 발하게 되는데 생레미와 오베르에서 그린 150여 점에 달하는 작품이 그것들이다. 이들 작품에는 폭풍과 같은 영혼의 내적 드라마가 광휘에 찬 울림속에 펼쳐지고 있다. 1890년 <까마귀가 나는 보리밭>을 마지막 작품으로 남긴 고흐는 어느 날 끝없이 펼쳐진 황혼의 지평선을 바라보며 자신의 가슴에 총을 겨누었다. 37세의 짧은 생을 마친 이 비극적 화가의 유서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진실로 우리는 그림으로서밖에는 그 아무것도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임두빈 교수
임두빈 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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