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 곧 봄인 것을
청춘이 곧 봄인 것을
  • 고지성 동문
  • 승인 2008.04.15 09:10
  • 호수 12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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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편안하게 써주면 된다는 말을 듣고서 그러겠노라고 입을 뗀 그 순간부터 나는 이 일이 그리 편안하지도 쉽지도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현재 잡지사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기고를 요청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또 한 마디로 거절당했을 때 얼마나 맥 빠지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온 대답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내가 과연 선배라는 명분 하에 무슨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느냔 말이다. 아직도 꿈과 일에 대해 고민하고 끊임없는 배움의 길에 서 있으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 무엇보다 어려운 내가…

따라서 나는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 무거운 책임을 살짝 모면하려 한다.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아름다움과 그리움과 회한이 범벅된 스물 무렵의 기억을 더듬어낸 내 일기의 한 페이지라고. 그러니 이 일기장을 열어본 당신의 감상에는 어떠한 방식이나 지침도 강요되지 않는다.

그 시절 나는 어땠나. 차분한 성격과 남 보기에 규칙적인 생활 패턴으로 잘 위장했던 탓인지 열정을 쏟아 부을 곳을 찾지 못해 혼자 속병을 앓던 숱한 시간들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이십대 초반을 지나왔다. 그럴듯한 사회적 대열에 합류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본연의 꿈에 온 마음을 맡기고 싶다는 이상 사이의 줄타기에서 현기증을 느꼈던 나날들. 마음이 끌리는 일이 있어도 이것저것 고려하다 포기하기 일쑤였고, 포기할 수 없을 만큼 확고하게 이루고 싶은 꿈이 없다는 것이 그에 앞선 근본적인 목마름이었다.

그렇게 전공과 취업전선을 위한 비전공, 책과 사람과 놀이의 영역을 안정적으로 기웃거리며 대학 생활의 8할을 채웠다. 그렇다고 그 시절의 8할을 부정하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내가 지나온 작은 순간순간이 하나하나의 날실과 씨실로 엮여 현재와 미래의 나를 지지하고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잘 알기에, 지금의 나를 더욱 성장시킬 수 있었던 열정이란 이름의 2할의 가능성을 너무 무심히 넘겨버렸다는 것에 대한 자책이 더욱 크기도 하다. 당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고 한들 그게 안일한 생활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있을까. 그럴수록 그것을 찾기 위해 더 가슴 가득 설레어 하고 치열하게 도전했어야 한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왜 새로운 세계를 두려워했을까. 왜 내 삶의 답을 마음과 행동이 아니라 머리로 찾으려 했을까.

앞으로의 나는 ‘봄마다 청춘’이기 위해 무던히 열정의 온도를 끌어올려야 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청춘이 곧 봄’이었다. 늘 새로운 싹을 틔울 수 있고 떨어진 떡잎의 상처도 빨리 아물 수 있는, 즉 참아야 할 것이 없었던 아름다운 시절, 청춘의 봄.

물론 내 스물아홉에도 다시 봄은 왔다. 올 봄에도 여지없이 하얀 목련은 가만가만 몽우리를 열어 봄빛에 활짝 꽃잎을 피울 것이고 또 소리 없이 질 것이다. 그리고 다시 봄이 찾아올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의 봄으로는 영영 돌아갈 수 없다.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던 꽃잎이 그토록 빨리 지는데 어찌 아프지 않을 수 있을까마는 다시 그 청춘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아플 것을 겁내지 않고 극에 달한 아름다움을 더 마음껏 누리고 싶거늘.

아쉬운 마음을 달래 볼까, 올 봄에는 혼자 기차에 올라도 좋겠다. 기차에서 내림과 동시에 순간 이외의 것들은 버리고 혹시나 남았을까 다시 다 버리고 새로운 청춘을 얻어 올 것이다. 내 몸 조촐한 빈 집이 되어 청춘만 데려올 것이다. 그리고 기차 안에서는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시간이란 없다. 있는 것은 한 순간뿐이다. 그리고 그 순간엔 우리의 전 생활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순간에 모든 것을 발휘해야 한다. -톨스토이’

고지성 동문
고지성 동문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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