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의 사회
'괴담'의 사회
  • 최이슬 기자
  • 승인 2008.05.27 09:04
  • 호수 12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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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과 사실의 구분은 대중의 몫

우리사회의 ‘괴담 시리즈’가 만수(滿水)에 이르러 범람하고 있다. 광우병 괴담으로 시작된 이번 괴담 시리즈는 수돗물, 의료보험 괴담으로까지 나갔다.

▲ 모든 괴담은 현실을 부풀려 가며 급속도로 번져가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먼저, 광우병에 관련한 괴담은 말 그대로 과학적인 설명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광우병의 극단적 위험만이 강조된 경우가 많아 정보에 약한 중, 고등생들 사이에서 거의 사실인 양 받아들여 지고 있다. 광우병에 대한 반발뒤에는 연예인들의 ‘말’도 한 몫했다.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결정한 다음 날 탤런트 김민선, 정찬 등과 가수 세븐 등이 자신의 미니홈피에 ‘미친소는 청와대 주방으로’, ‘미친소 개나 줘라’ 등의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며 격하게 자신의 의견을 표출한 바 있다.

이미 한국사회에서 연예인들이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이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커짐에 따라 그들의 의사와 그에 따른 표현 자체 또한 파급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연예인의 의사표시에 취약한 중, 고등학생들에게는 일부 ‘선동’효과까지 불러일으켰다. 괴담 또한 이러한 연예인들의 미니홈피에 게제된 광우병 관련 게시물이 여기저기로 퍼지면서 광우병 관련 카툰, 만화, 플래쉬 애니메이션 등 현대사회의 미디어 총체를 망라한 광우병 소재의 웃을 수 없는 생산물들이 대중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괴담은 쓰촨성 대지진 사태에서도 여지없이 그 위력을 발휘했다. 티베트의 독립의지에 대한 중국정부의 무력진압으로 전 세계적인 여론이 좋지 않을 때를 맞춰 양쯔강 상류에 위치한 쓰촨성에 강도 7.8에 이르는 대지진이 발생해 현재 사망자가 4만명을 넘어서고 부상자는 300만명에 달하고 있다. 원자폭탄 252개의 위력과 맞먹는 이번 대지진 사태로 인해 중국의 베이징 올림픽을 불과 100여일 앞두고 퍼지는 괴담은 티베트 승려들이 종교적인 힘을 이용해 대지진을 일으켰다는 판타지 소설에 가까운 내용들이다.

이런 괴담들에 네티즌들과 대중들이 현혹되는 이유는 정말 ‘그럴싸’하기 때문인데, 광우병 괴담의 경우 의학과 과학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이 썼다고 믿을 정도로 진실인지 거짓인지 모를 과학적 용어들이 등장하는 한 편, 쓰촨성 지진참사에 대한 괴담 또한 쓰촨성의 지리적 특성과 역사적 사실들이 등장하는 통에 ‘예’와 ‘증거’에 약한 대중들을 낚는 데는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대중들의 특성 상 어떠한 현안에서 긍정적인 내용보다는 부정적인 내용에 끌리게 마련이고 다양한 의견들이 혼재하는 가운데 하나의 가십거리가 되기 좋은 괴담들이 그 틈을 파고들어 논란거리에 대한 흥미를 더하면 괴담은 곧 하나의 정보이자 사실처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 광우병 사태를 지켜보며, 우리대학도 비슷한 괴담에 재학생들이 불안해했던 것을 떠올렸다. 죽전캠퍼스로 이전한지 이제 1년이 다 돼 가지만 이전문제를 안고 10년을 표류했던 단국호의 위상과 학생들의 여론 문제는 누가 만들어냈는지도 불분명한 ‘이전괴담’으로 단국호의 닻이 흔들리고 구성원간의 신뢰도가 현격히 떨어졌다. 이전괴담에는 특히 재단과 대학당국을 불신할 수 밖에 없는 내용이 많았다. ‘부동산 투기’부터 시작돼 ‘재단의 비리’, ‘건설사와의 로비문제’ 등 심지어 예정된 이전장소였던 죽전이 아닌 천안캠퍼스와 통합한다는 어이없는 괴담까지 흘러나와 서울캠퍼스 재학생들과 동문들이 거세게 반발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1년이 흐른 지금 괴담은 이제 없다. 우리는 한남동캠퍼스를 역사의 한 부분으로 남긴 채, 죽전캠퍼스에서 지역적 환경과 특성을 이용한 대학마케팅에 주력하고 있으며 실제로 지난 21일 열렸던 대동제 개막식에 우리대학 재학생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이 대거 참석해 가수들의 공연과 불꽃놀이 등의 다채로운 행사를 함께 즐겼다.

괴담은 사실 속에 우스갯소리로 묻힐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괴담은 현대사회의 열린 미디어 체제에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하나의 ‘의견’일지도 모른다. 다만 괴담을 사실이 아닌 ‘괴담’이라고 말할 수 있는 바른 안목을 가진 이들이 아직은 많다는 것과 그들이 대중들을 올바른 시야로 이끌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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