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과 소통
시스템과 소통
  • 유인식 동우
  • 승인 2008.06.05 11:17
  • 호수 12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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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7일, S고에서는 ‘학교 자율화 계획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교육대토론회를 개최했다. 4·15 자율화계획에 대해 교사-학생-학부모-동문 대표가 나서서 찬반 양측으로 나누어 입론을 하고 반론을 제기하는 형식으로 3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이 토론회 발제를 맡은 D대학의 P교수가 언급한 내용을 소개하면서 학교 현장의 의견을 생각해 보았다. P교수가 근본적으로 문제 삼은 내용은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이다. 학교 자율화 논의의 귀착점은 결국 학교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한 노력이고, 그 노력은 학생 개인의 타고난 능력과 소질을 최대한 개발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중앙 정부는 ‘자율화’ 조치로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낙관하고 있다.

그러나, P교수의 지적대로 학교는 손발이 꽁꽁 묶인 거대한 공룡처럼 꼼짝도 못하고 있는 ‘교육과정’이 있다. 과목과 과목당 시수, 필수 과목과 선택과목 등은 국가와 사회의 요구, 그리고 학습자 개인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여기에 대학입시와 교원 수급, 시설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공룡을 붙잡고 있다. 근본적으로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은 국가사회의 요구가 지나치게 반영되어 있다. 기억해 보라. 우리가 초중고를 다니면서 공부하고 싶은 것 공부하고, 공부하고 싶지 않은 것 공부하지 않은 적이 있는가.

7차 교육과정이 시행된 이후 수준별 수업과 과목 선택 등을 넓혀왔다고 하지만 사회 변화와 직업 구조의 변화 추세를 반영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고, 무엇보다 학생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었다. 국민공통기본 교육과정에 필수과목을 고정시켜 학생의 선택 여지는 무시됐다. 2,3학년 때의 선택 과목도 정해져 있다. 예를 들어 사회과목 11~12과목 중에 학생들은 2~4과목에서 선택해야 하고 자신의 흥미가 부족한데도 정해진 과목을 공부해야만 하는 것이다. 토론회에는 미국 Madison의 W고등학교와 우리 고등학교를 비교한 흥미로운 자료가 제시되었는데, W고교는 총 17개 영역에 236개 과목이 개설되었는데 이중 필수는 7개 과목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90~100개 과목에 21개 과목이 필수로 정해져 있었다. 언뜻 보면 우리가 지식의 폭을 중시했다면 미국은 지식의 깊이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1주일에 우리는 1시간이나 2시간을 공부하는 과목이 많고 4,5시간짜리 과목은 적은데 비해 W고교는 주당 5시간으로 심화학습이 가능하도록 짜여 있다. 우리 교육이 부실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결국 공룡과 같은 교육과정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학교 내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으로 ‘자율화’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2,3학년의 선택중심 교육과정부터 여건을 조성하고 1학년의 공통과정에서도 학생의 선택권을 보장해 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소통’의 부재로 인해 많은 이들의 우려하고 있다. 대통령까지 인정한 ‘소통’의 부재는 결국 ‘공룡’과 같은 교육과정의 부실에서 온 당연한 결과이다. 어렸을 때부터 정해진 과정을 강요당해온 국민이, 그리고 그 속에서 배출된 소위 지도자가 진정한 ‘소통’의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오늘과 같은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모 방송국 토론회 사회자의 지적대로 ‘예고된 쇄신’이나 ‘지연된 쇄신’은 ‘쇄신’이라고 할 수 없듯이 근본을 도외시한 채, 소통의 결과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진행되는 어떤 정책도, 어떤 ‘쇄신’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유인식 동우
유인식 동우

 dkdds@danmoo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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