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되겠습니다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되겠습니다
  • 김낙현(언론영상·02졸) 동문
  • 승인 2008.09.09 19:38
  • 호수 1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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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난 나그네가 객창감을 느끼는 건 좋든 싫든 고향에 대한 향수를 느끼기 때문일 겁니다. 어머니의 존재가 거추장스럽게 여겨지던 스무살의 남자들이 군대에서 어머니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눈물이 맺히고 마음이 놓이는 것 역시 돌아가 쉴 곳이 있다는 안도감 때문이죠. 버리고 싶고 떠나고 싶지만, 떠난 후에도 마음속에 바탕이 되고 기준이 되는 모든 것들…… 우리는 그런 걸 ‘보수’라 부릅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보수적입니다. 아무리 스스로 개방적이고 진보적이라고 생각을 해도 자식을 걱정하고 지키려는 모성애는 모든 어머니를 보수적으로 만듭니다. 반면 자식들은 사춘기를 지나며 어머니를 벗어나는 ‘진보’의 길을 걷고, 갈등하곤 하죠. 하지만 지키고 감싸려는 어머니와 부수고 나아가려는 자식의 싸움은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자식 이기는 어머니 없고, 부모가 안 되는 자식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서로를 이해하고 ‘합(合)’을 찾아갑니다.

역사 발전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한다는 헤겔의 변증법은 이렇듯 ‘가정의 발전’에도 적용되더라고요. 지금 대학생들의 사회적 무관심을 우려하는 기성세대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신문과 책을 잘 읽지 않으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무관심한 편입니다.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은 깊어지지만, 사회 전체에 대한 관심은 점점 얕아지고 있죠.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을 실감케 합니다. 하지만 학생들의 개인주의적 성향을 그들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겠죠. 파편화 세분화 돼 가는 그들 역시 외롭고, 그래서 더욱 무언가에 기대고 싶어 할 겁니다.

객창감을 느끼며 보수를 찾지만,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아쉽게도 그곳은 쉴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곳은 해묵은 이념 다툼을 하고 있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느라 늘 시끄러운 곳입니다. 사회의 윤리적 기준을 제시하기는커녕 심심하면 의문스런 사과 상자를 받거나 성추행을 저지르며 관행이라 말하기도 하죠. 사회를 둘로 나누고 - 학생들 눈에는 둘 다 똑같이 보이지만 - 한 쪽을 선택하라 강요하니 기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질 않습니다. 늘 부부싸움을 하는 부모에게 '싸우지 말라'는 말을 하는 자식을 나무라며 신경 끄고 들어가 공부나 하라는 것과 같습니다. 울 준비는 되어 있는데 기대어 울 곳이 없는 게 ‘학교 밖’ 세상입니다. 딛고 일어설 올바른 ‘정’이 없으니 어떻게 어디로 ‘반’해야 할지도 모르며,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합)조차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요즘 들어 부쩍 듭니다.

‘역사는 승리자의 일기장이다’라는 말을 실시간으로 증명이라도 하듯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사 교과서가 개편돼, 지금 배우고 있는 역사마저 의심하고 믿을 수 없게 만드는 사람들. 기대어 울 곳을 뺏고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역사에 대한 관심마저 빼앗아, 제가 사회에 처음 나와 느낀 감정은 ‘고아’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푸념만 늘어놓았네요. 요즘 들어 자꾸 ‘부끄럽지 않은 기성세대가 돼야겠다’는 책임감이 앞섭니다. 혹시라도 대학생, 특히 제 후배들이 ‘왜 우리 사회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없고, 오로지 스페셜리스트만 있냐’고 한탄할까봐 겁이 나서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사회에 나왔을 때 기댈 언덕이 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기다리고 있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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