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아틀리에] 마지막 -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국보83호)
[비밀의 아틀리에] 마지막 -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국보83호)
  • 임두빈(대중문화예술대학원) 교수
  • 승인 2008.09.09 17:41
  • 호수 1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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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동하는 침묵, 고도의 정신美

高신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미술작품은 경주에서 출토된 국보 제83호인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과 안동에서 출토된 국보 78호인 금동 반가사유상이다. 이 2개의 금동 반가사유상은 신라뿐만이 아니라 삼국시대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반가사유상은 다른 불상들과는 달리 독특한 형태의 자세를 보이고 있는데 부처가 걸상에 앉아 오른쪽 발을 왼쪽 다리 무릎 위에 올리고 오른팔 팔꿈치는 오른쪽 다리에 의지한 채 오른손을 들어 손끝을 턱에 대고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이다. 이러한 반가사유상의 모습은 원래석가모니 부처가 출가하기 전 싯다르타 태자였을 때, 현실세계의 삶의 고통에 대해 깊게 고뇌하여 명상에 잠겼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 한다.

반가사유상은 고대 인도에서 불상이 처음 조성되었을 때 만들어져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과 우리나라에 까지 전파되었던 불상 형식의 하나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에 널리 유행했는데 당시에 퍼져 있었던 미륵신앙의 영향에 의해 반가사유상이 미륵보살을 뜻하는 것으로 만들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국보 제83호인 금동 반가사유상은 삼산관 금동 반가사유상이라고도 불린다. 이 반가사유상의 머리에 쓴 관이 3개의 산이 빙 둘러 장식된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필자는 이 걸작을 대할 때마다 깊은 침묵 속에 조용히 넘쳐흐르며 주위를 깨끗하게 정화시키는 명상의 신비로운 힘을 느낀다. 질문을 하려 해도 그 말조차 무화 시키는듯한 조용한 분위기 번잡한 세속의 생각들과 온갖 욕망의 불길을 잠재우는 그 깊은 침묵의 심연 엄숙하면서도 결코 차갑거나 고압적이지 않고 넉넉하면서 따듯한 인간미가 흐르는 표정 고귀한 침묵의 깊이가 따듯한 인간미와 하나가 되어 승화된 신비로운 예술혼의 정화를 삼산관 금동 반가사유상은 지니고 있는 것이다. 작품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힘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 일까?

필자는 이 금동 반가사유상을 정면에서 한참 동안 바라본 뒤 서서히 둘레를 돌면서 여러 방향에서 관찰해보았다. 약간 수그린 듯한 얼굴에 가볍게 앞으로 기울어진 자세 정면에서 몇 발짝 뒤로 물러서서 바라보면 얼굴과 상체와 하체가 수직적인 구성을 기본으로 하고 거기에 오른발을 왼쪽 다리의 무릎 위에 얹어놓음으로써 수평적인 움직임으로 변화를 주고 있음을 본다. 그리고 이러한 수평적 흐름은 수직적 구성의 일방적 흐름을 적절히 제어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형태에 안정감을 주고 있기도 하다.

수직과 수평적인 구도는 명상에 잠긴 얼굴 표정과 어울려 작품에 엄숙함과 고요함 평화로운 분위기를 감돌게 하고 어깨에서 팔꿈치로 팔꿈치에서 팔목으로 흐르는 두 팔의 사선 방향성은 다시 손등에서 손끝으로 흐르는 조용한 움직임의 변화에 의해 작품에 생동감을 부여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생동감은 반가사유상의 미소 띤 따뜻한 표정에서 안으로 수렴되어 작품의 엄숙하고 평화로운 기운 속에 조용히 번져 나오는 내면적인 활기로 화하는 것이다.

특히 이 작품을 만든 조각가는 화려함과 번잡함을 경계한 뛰어난 예술적 안목에 의해 전체적으로 세부적인 디테일을 생략하고 형태의 우아함과 사실성이 조화를 이루게끔 단순화함으로써 작품이 속된 분위기에 빠지지 않고 앞서 설명한 적절한 형태적 구성에 의해 고상한 기품이 흐르는 내면적인 따뜻한 아름다움을 지니도록 이금동 반가사유상을 만들었던 것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위대한 예술작품은 시대 전체가 심오한 정신적 비전으로 충만했을 때 그 문화의 꽃으로 탄생하는 법이다. 삼국시대 예술의 정화인 금동 반가사유상은 당시의 깃ㅍ은 정신적 비전이었던 불교사상이 한 천재의 내면에서 그가 지닌 천부적 자질과 영혼적인 일체화를 이루어 기적처럼 만들어지게 된 걸작이었던 것이니 지금도 이 금동반가사유상은 넘쳐 흐르는 내면적 생동성을 지닌 고귀한 침묵과 절제된 인간미가 흐르는 따뜻한 아름다움으로 인해 시대를 초월하여 여전히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이다.

일본교토의 고류사에는 신라에서 만들어져 일본에 전해진 나무로 만든 반가사유상이 있는데 이 목조 반가사유상의 형태가 금동 반가사유상(국보 제83호)과 매우 유사하여 당시 이와 같은 형태의 반가사유상이 다수 만들어졌음을 짐작케 하고 있다. 현재까지 남아 전하는 목조 반가사유상은 이것 한 점뿐이다. 한때 일본은 이 목조 반가사유상을 자기네 작품으로 여겨서 최고의 일본문화재로 여겨왔으나 그 후 일본학자와 우리나라 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신라에서 만들어진 작품으로 결론을 보게 되었다.

(임두빈, 『서양미술사 이야기』 가람기획,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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