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년 문화유산의 빗장 열렸다
오천년 문화유산의 빗장 열렸다
  • 박준범 기자
  • 승인 2008.10.14 00:00
  • 호수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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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학만이 해낼 수 있었던 사업’ 세계 최대 『한한대사전』 완간

17일 전16권 완간, 28일 출판기념회
몽골 대통령, 한승수 국무총리 등 참석 예정
5만5천자·45만 단어·원고지 높이 159미터·3백10억 투입
대학 구성원들의 자부심 고취, 실질적 대학 발전 원동력 등의 다양한 파급효과 예상

보이지 않아 두려운 일도 있지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시작하는 일도 있다. 32년의 산고 끝에 오는 28일 출판기념회를 갖는 『한한대사전(漢韓大辭典)』 편찬사업을 두고 하는 말이다. 수록 문자만 약 5만 5천자에 이 문자를 조합한 어휘가 45만 단어에 달한다. 색인집을 포함해 총 16권으로 구성된 이 책의 원고 매수는 212만매. 차곡차곡 쌓으면 159미터, 일반 건물 53층 높이에 달하는 규모이다. 연인원 약 20만 명이 동원되고, 총 소요 경비만 310억 원이라는 막대한 돈이 들어간 이 사업을 우리대학이 해냈다. 실제로 교육과학기술부 이걸우 학술연구 정책실장은 “나라에서 단국대학에 빚을 졌습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당연히 국가가 했어야 할 대규모 사업을 사학(私學)이 했다는 뜻이다.

『한한대사전』 편찬사업의 시작은 1977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2면 ‘한한대사전의 역사’ 참조). 그 당시 국문학, 민속학, 국사학 등 국학에 종사하는 연구자들은 한자를 우리말로 풀어 놓은 한자어 사전이 없어 일본 『대한화사전』과 중국 『한어대사전』에 의지해 국학을 연구할 수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자연히 우리나라 선인들이 만들어 썼던 고유의 어휘에 대한 사전의 필요성이 절실했으나 누구도 사전 편찬에는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국어학계의 원로이자 우리대학 동양학연구소장을 지내기도 했던 故 이희승 박사도 “사업 자체가 어려운 것을 떠나, 이런 일을 감당해 낼 사람들을 모으는 것조차도 힘들 것”이라며 『한한대사전』 편찬사업을 기획하던 장충식 총장(현 명예총장)을 만류할 정도였다고 한다.

편찬사업을 기획한 지 6개월만인 78년 4월 편찬원 1기 공채가 시작됐다. 이때 공채 업무를 맡았던 연구원이 현 퇴계기념중앙도서관 도서관장인 강재철(국어국문학) 교수. 32년 『한한대사전』의 역사 속에 우리대학 절반의 역사가 스며있다.

80년 3기 편찬원을 모집할 때는 신군부 정권의 등장과 함께 우리대학에도 휴교령이 내려졌다. 시험을 치를 장소도 정하지 못해 우여곡절 끝에 찾은 곳이 강남의 경복여상. 이곳에서 8명의 편찬원을 뽑아 그나마 안정적인 인적 구성을 갖추게 된다.

78년 6월 동양학연구소에 한한대사전 편찬실이 설치된 지 21년만인 1999년 1월 『한한대사전』제 1권이 간행된다. 규장각 도서관에 소장돼있는 한국학 관련 서적 수만 권을 대상으로 조사를 시작해, 이 중 삼국사기, 삼국유사, 조선왕조실록 등 선인들이 썼던 책들에서 우리나라만의 한자와 우리식으로 쓴 한자 어휘를 다시 발췌하는 과정을 거쳐 어휘채록카드를 작성하는 원고 정리의 시간만으로 20여년의 시간이 걸린 것. 이러한 원고 작업을 바탕으로 같은 해 12월, 거의 1년 만에 2권이 나온 것을 시작으로 해 2006년까지는 매년 한 권씩 9권까지 발간될 수 있었다.

한편 2005년 10월 ‘한한대사전 특별대책위원회’가 구성돼, 편찬 작업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법으로 2007년 4월에는 10, 11, 12권이 동시 간행됐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2007년 5월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13, 14, 15권 및 별책 색인집과 간행기가 발간돼 최초의 기획·구상으로부터 32년이라는 오랜 기간 만에 완간될 수 있었다.

이 기간 동안 동양학연구소는 『한한대사전』만 만든 것이 아니다. ‘순 한국식 한자어 사전이라도 먼저 볼 수 있게 만들어달라’는 학계의 요구에 부응해 1996년 11월에는 『한국한자어사전』 전 4권을 완간, 출판 당해에 ‘한국 출판문화상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쉴새없는 윤전기 『한한대사전』 완간을 앞두고 윤전기가 쉴새없이 돌아가고 있다.(사진 상) 한켠에서 동양학연구소 관계자들이 교열에 몰두하고 있다.
출판이 중단될 뻔한 적도 있었다. 98년 학교 재단 부도라는 어려운 상황에서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이 편찬사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학내에서 나오기 시작한 것. 외부 출판사에 지금까지 해 놓았던 결과물을 인세를 받고 넘기자는 주장도 제기됐다. 다행이 당시 이사장이었던 장충식 명예총장이 “이런 사업을 맡을 수 있는 출판사도 없거니와 학교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라며 중단 목소리를 잠재웠다. 그 후 장 이사장은 총장이 바뀔 때마다 ‘대사전 편찬사업 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중단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기까지 하며 편찬사업을 추진했다고 한다.

동양학연구소 이행렬 과장은 “이번 『한한대사전』의 완간으로 ‘국학 연구자의 학문적 불편을 해소하고, 학술·문화사적 자부심을 고양한다’는 본연의 취지를 뛰어넘는 다양한 파급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과장이 꼽은 가장 큰 효과는 ‘대학 구성원들의 자부심 고취’이다. 우리나라 어떤 대학, 심지어는 정부마저도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대규모 편찬사업을 완성한 모교에 대한 자부심이 그것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수익사업도 아닌 일을 30년간 지속해온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라며 “이런 대학에 다니고 있음을 어디서든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이 과장은 말했다.

실제로 오치르바트 몽골 전 대통령, 나고야대 이케우치 사토시 교수, 센슈대 코야마 토시히코 교수, 북경대 심정창 한국학연구소장, 콜롬비아대 찰스 암스트롱 한국연구소장 등이 『한한대사전 간행기』의 축사를 통해 “한국에서 이런 사전을 내놓았다는 것에 놀라고 감탄했다”는 평을 했다. 국내의 주요 언론 역시 우리대학의 이번 『한한대사전』 완간을 앞 다투어 보도하고 있다.

『한한대사전』 완간의 또 다른 의미는 ‘실질적인 대학 발전의 원동력’이다. 이 사업을 구상하고 추진한 장충식 명예총장은 모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350억 원이라는 이런 막대한 돈을 이 사업에 쓰지 않았다면, 분명 장학금이나 학교 발전을 위한 투자자금으로 썼을 것이다”라며 “나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최대, 최고’라는 평을 받는 이 사전을 통해 국가, 그리고 기업으로부터 딱 그만큼(350억 원)의 대학발전기금을 끌어 모아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주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어떤 대학도 하지 못한 『한한대사전』편찬과 같은 대규모 사업을 추진한 ‘가시적 성과’를 통해, 대학 발전의 초석이 될 발전기금 모금에 박차를 가할 원동력을 얻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동양학연구소의 입장에서 봤을 때 『한한대사전』 완간은 ‘국내 4대 메이저 연구소로 꼽히던 동양학연구소의 옛 위상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로도 받아들여진다. 이행렬 과장은 “그동안 편찬사업에 집중하느라 학술 연구 분야에 상대적으로 소홀한 면이 있었다”며 “앞으로 연구 기능을 활성화 해 ‘동양학의 메카’라는 예전의 명성을 되찾겠다”고 말했다.

개발비만 12억 원이 들어간 신규 폰트에 대한 소유권도 우리대학의 큰 자산이 된다. 사업을 시작하던 1978년 당시, 컴퓨터가 흔하지 않던 시절 국내에서는 거의 최초로 전자출판 시스템을 도입해 컴퓨터에 소위 ‘먹자’가 많았던 것이 신규 폰트 개발로 이어졌다. ‘먹자’란 컴퓨터에 입력돼있지 않은 ‘없는 한자’로, 이런 없는 글자들을 만들어내는 일에만 12억 원의 비용이 들어갔다고 한다. 이밖에도 그동안 편찬사업에서 축적된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각 분야별로 전문화시키고, 인터넷과 접목시켜 한국학 관련 연구자료로 무한히 발전시킬 수 있는 잠재력도 지니고 있다.

28일 시청 앞 플라자호텔에서 열리는 출판기념회에는 한승수 국무총리를 비롯해 정원식 전 국무총리, 김학준 동아일보 회장, 김정배 한국학중앙연구원장, 교육과학기술부 이걸우 학술연구정책실장, 학술진흥재단 우재창 사무총장 등의 국내 귀빈이 참석할 예정이다. 여기에 오치르바트 전 몽골대통령, 출템수랭 몽골 국립사범대 총장, 북경대 심정창 한국학연구소장, 호춘혜 주혜대학원장, 센슈대 코야마 토시히코 교수, 런던대 앤더스 칼슨 한국학과 교수, 콜롬비아대 찰스 암스트롱 한국연구소장, 나카토미 일본 로터리클럽 총재부부 등이 해외 귀빈으로 참석해 우리대학의 『한한대사전』 완간을 축하할 예정이다.

박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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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sari@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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