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살배기 아들녀석이 서른여섯이 되었습니다”
“다섯살배기 아들녀석이 서른여섯이 되었습니다”
  • 기록 및 구성: 박준범 기자
  • 승인 2008.10.14 00:25
  • 호수 12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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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한대사전』과 31년 함께한 허호구 편찬실 수석팀장

허호구 편찬실 수석팀장은 『한한대사전』 완간까지 31년의 세월동안 그 곁을 지켰다. 단대신문은 허 수석팀장을 만나 나눈 31년의 이야기를 편찬원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편집자 주>

아들이 다섯 살 때 들어왔는데 벌써 그 녀석이 서른여섯이 됐습니다.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는 세월이 흘러, 그동안 고락을 같이 했던 편찬원 여러분들과도 가족과 같은 정이 들었습니다.

『한한대사전』과 함께 한 지난 31년간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고려대학교 한적실에 근무하다가 우연히 보게 된 동양학연구소 편찬원 1기 공채 공고가 이렇게 여러분들과의 인연의 끈이 되었네요. 1기 공채로 뽑힌 다섯 명의 편찬원들과 규장각 도서관을 돌며 한국학 서적을 뒤적이던 때가 엊그제 같습니다.

80년 신군부 시절, 휴교령이 내려져 공채 시험 장소를 찾지 못한 상황에서 시험장을 물색하기 위해 이리저리 동분서주하던, 이제는 도서관장이신 강재철 연구원의 모습도 선합니다.

어려운 근무 여건에 다들 한 번 씩은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우리가 가진 능력으로 세상에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신념, 국가에서도 하지 않은 어려운 사업을 해내고 있다는 사명감, 그리고 이 일이 우리와 같은 국학 종사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마음과 땀이 모여 지금의 『한한대사전』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장충식 명예총장님께서 이 일을 기획하실 당시 주변에서는 “이 일을 감당해낼 만한 사람을 모집하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몇 번의 중단 위기를 겪기도 하면서 이렇게 힘든 일에 매료돼 휴일도 잊은 채 일해 온 편찬원들이 더욱 고맙고 자랑스럽습니다.

한편으로는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선인들의 자료를 더 많이 찾아 볼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 품었던 꿈이 이루어져 기쁘기도 합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새벽까지 일하던 젊은 친구들이 늘 고맙고 안스러웠습니다. 이 친구들의 열의가 아니었다면 완간까지의 시간은 좀 더 미뤄졌을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후속사업이 진행된다면 이 친구들의 열정이 한 번 더 빛을 발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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