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현답] ⑥정직한 사회를 위하여Ⅱ
[우문현답] ⑥정직한 사회를 위하여Ⅱ
  • 황필홍(문과대학) 교수
  • 승인 2008.10.15 16:42
  • 호수 12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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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없는 법치가 개인 삶의 손익에 영향을 끼치게 하는 것이 정직이 살아 숨쉬게 하는 첫 단추

[우문]
몇 해 전이다. 모 신문 생활정보란에 자동차수리를 하려고 할 때는 아무 수리점에 그냥 맡기면 제대로 고치는지 알 수 없고 또 가격도 바가지를 쓰는 수가 있으니 그래도 평소 아는 자동차수리전문점에 맡기는 것이 그래도 위험부담이 적다고 조언하는 기사가 있었다. 우리나라 정도의 문명을 갖추고 있는 나라치고 과연 지구촌 어느 나라가 있어 공영언론에서 일반 수리점은 믿을 수 없으니, 얼마나 믿을 수 없으면, 그저 아는데 맡기는 것이 최선이라고 충고할 수 있을까.

[현답]
역시 몇 해 전 일일 것이다. 어느 TV에서 도로의 자동차 정지선에 차가 멈출 때 그 선을 밟지 않고 잘 서는 양심이 살아있는(?) 운전자에게 냉장고를 선물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취재팀이 어디엔가 숨어서 지켜보다가 양심 운전자를 발견하면 쏜살같이 달려가서 축하하고 냉장고를 공짜로 주는 거의 세계 코미디급 수준의 프로였던 것 같다. 누가 지켜보지 않은 데서도 시민들이 얼마나 정직하게 규칙을 준수하는가 알아보는 것이었다는데, 놀랍게도,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의 교통문화가 한층 나아졌다고 한다.

요사이 몇 년 사이로 경기가 척박해지면서 미술품 위작사건이 부쩍 더 늘었다고 한다. 신문방송은 연일 가짜사건이 화젯거리다. 좀 과장이겠지만 미술계에 이런 농담이 있다: “일본에는 가짜작품이 없고 한국에는 가짜작품이 많고 중국에는 모두가 가짜다.” 어찌 일본에 작품이 다 진짜고 중국에 진짜작품이 없겠는가마는 어쨌거나 그 사회의 정직도를 가늠케 한다는 생각에 가짜가 많다는 우리의 평가에 대해서는 씁쓸하다. 15년 전 미국에서 학위공부를 마치고 바로 귀국했을 때 무슨 얘기를 하면 학생들이 말끝마다 “진짜요?” 하고 되물어서 사뭇 놀란 적이 있다. “아니, 이 사람들이 전부 속고 살았나…”

정직한 사람이 잘 사는 사회를 만들 수 없다면 그것 참 답답하다. 경제학 통어通語로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驅逐한다고 하는데 신명나지 않는 일이다. 국가와 사회와 개개인이 다 나서서 방도를 구해야 하리라. 내 생각으로는, 우선 부정의한 힘의 지배rule by force가 아니라 정의로서의 법의 통치rule by law가 우리 사회의 중심에 우뚝 서야 한다. 잘한 일에는 사회적 인정approval을 통해서 상을 주고 잘못한 일에는 사회적 불인정disapproval을 통해서 벌을 주는 간단없는 법치法治가 제대로 뿌리를 내려야 한다. 그래서 그 상벌이 직접적으로 또 실질적으로 나 개인의 삶의 손익에 영향을 끼쳐야 한다. 정직이 살아 숨 쉬게 하는 첫 단추다.

18세기 영국의 철학자 흄David Hume은 인간성을 고찰하면서 퍽 흥미로운 지적을 하였다: “사람들이 바른 행동을 하려하는 것은, 긴 안목에서는, 옳게 행동하는 것이 옳지 않게 행동하는 것보다 자기 이윤을 증진시키는데 더 유용하기 때문이다.” 바꿔 해석한다면 개인으로서는 자신에게 유리하면 언제라도 어떤 행위를 할 용의가 있지만 불리하면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로서, 정직한 행위에 대해서 사회가 즉각적으로 인정하고 포상하여야 하며 부정직한 행위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고 처벌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도출될 수 있는 언급이다. 이 인간본성에 공명하는 상벌의 법치를 사회가 확보하지 못하면 그래서 구성원 개개인이 서로 신뢰하지 못하면 제아무리 국가가 나서서 학교가 나서서 교회가 나서서 바르게 살라고 외친들 정의사회구현이라는 슬로건은 실현 불가한 이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는 우리사회에 만연한 형식과 명분의 이념적 구호에만 매달려 정직한 사회를 만들자고 선언만 할 일이 아니라 보다 실질적 사실적 지식에 - 러셀Bertrand Russell같으면 차라리 과학적 지식에 - 기초하여 국가사회 각계각층의 다종다양한 이념과 체제를 대변하는 법치의 국가를 건설할 때다.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있듯이 정직한 사회에 정직한, 그리고 나아가 행복한, 삶이 깃든다.

황필홍(문과대학) 교수
황필홍(문과대학) 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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