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쟈’의 영국 찍고 아프리카로! ④
‘허쟈’의 영국 찍고 아프리카로! ④
  • 허지희(문예창작·4) 양
  • 승인 2008.11.17 19:44
  • 호수 12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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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이아입니다

1시간 안에 짐을 싸서 뉴캐슬로 떠나라고? 여유롭게 아침을 먹고 있는데 학교로부터 불호령이 떨어졌다. 11월 팀에 소속된 나는 학비 절반을 감면받기 위해 두 달간 헌옷 콜렉팅, 팩킹 등의 일을 하는 가이아로 활동하기로 되어 있었다. 이를 위해 다른 두 친구와 뉴캐슬에 있는 가이아 하우스로 떠나야했다. 며칠 후에나 출발할 줄 알았는데 계획이 변경돼버린 것이다. 나는 “오 마이 갓!”을 외치면서도 새로운 변화에 즐거워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차로 3시간 걸려 도착한 뉴캐슬은 인상적인 도시였다. 시내 중심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CICD 가이아들을 위한 집이 있었다. 20명 정도 생활할 수 있는 가이아 하우스는 아기자기 꾸며진 좁은 3층집이었다. 집에 들어섰을 때 우리를 반긴 것은 한 헝가리 친구였다. 그녀는 우리를 주방으로 데려가 손수 만든 헝가리 음식을 권했다.

식사 후에 우리가 머물 방으로 갔다. 나는 다시 “오 마이 갓”을 외칠 수밖에 없었다. 좁디좁은 방에 2층 침대 3개가 놓여있었고, 한 침대 주변은 어질러진 옷가지로 우린 발을 디딜 수 없었다. 이미 세 사람이 사용 중인 방은 새로운 세 사람을 수용하기에 벅차 보였다. 정리 또 정리. 나는 이렇게 좁은 방에서 많은 이들과 살아본 적이 없었다. 나만을 위한 옷장과 테이블과 의자가 없다니. 처음엔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지만 곧 생각을 바꿨다. 이것은 일종의 기회라고, 훗날 아프리카에 가서도 나만의 옷장과 깨끗한 화장실을 바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생각을 바꾸니 모든 게 쉬워졌다.

▲ 가이아 하우스의 첫번 째 임무, 리플렛팅
뉴캐슬에서의 둘째 날, 본격적으로 가이아 일에 돌입했다. 우선 나는 헌옷 기부를 바라는 내용이 적힌 전단지를 집집마다 꽂는 일, 리플렛팅에 도전하기로 했다. 가이아 티쳐 리즈가 Jenny라는 내 이름이 적힌 지도 하나를 줬다. 이 지도를 보며 나는 집집마다 리플렛을 꽂아야했다. 토머스라는 부지런한 친구와 함께 일하게 됐다. 그는 걸음이 느린 나를 위해 천천히 걸어줬다. 리플렛을 꽂기 위해선 대문을 열고 정원을 지나 우편함이 달린 현관까지 가야했다.

▲ 거칠고 딱딱한 우편함 입구
우편함 입구는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거칠고 딱딱했다. 종이를 밀어 넣으니 구겨져 금세 보기 싫게 됐다. 어떤 집에선 개가 문 안쪽에서 달려들어 손을 물릴 뻔했다. 리플레터는 하루 평균 7~8시간을 걸으며 리플렛 1000장을 뿌려야 한다. 오후 12시 무렵, 3시간을 걷고 나니 배가 고팠다. 토마스는 점심은 1시쯤 먹어야 5시까지 알차게 일할 수 있다며 잠시 길에 주저앉은 내게 웃으며 손 내밀었다. “1000장 뿌리고 나면 사람들이 내게 얼마나 많은 백(bag)을 줄까?”라는 내 물음에 토마스는 “10개?”라고했다. 그것이 평균이라는 말에 나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세상에 공짜도, 쉬운 일도 없다는 것을 나는 리플렛팅 하루 만에 이를 실감했다.

▲ 리플렛팅 중 휴식시간
일이 끝나갈 5시 무렵, 폭우가 쏟아졌다. 고약하기로 유명한 영국날씨는 뉴캐슬에서도 예외가 없었다. 비옷을 챙겨오지 않아 속옷까지 다 젖고 말았다. 5시에 가이아 차량이 약속된 장소로 우리를 픽업하러 왔다. 왜 그리 반갑던지, 홀딱 젖은 나를 다독여주는 친구들을 보고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것은 미처 다 돌리지 못한 젖은 400장의 전단지. 그리고 생각했다. ‘다음엔 젖지 않게 잘 다뤄야지. 나를 아프리카로 보내줄 고마운 보물이니까.’ 가이아 하우스로 돌아오는 길, 불면증은 어디가고 나는 금세 곯아떨어졌다.

허지희(문예창작·4) 양
허지희(문예창작·4) 양

 winkha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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