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묵처방] 계영배(戒盈杯)
[백묵처방] 계영배(戒盈杯)
  • 강재철(국어국문) 퇴계기념중앙도서관장
  • 승인 2008.11.17 10:50
  • 호수 12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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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잔 계영배(戒盈杯)는 욕심의 과함을 경계하는 잔이었다

술자리가 잦은 철이다. 만추의 홍엽 아래 학과 선후배끼리, 또는 동아리의 선후배끼리 아니면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둘러 앉아 잔을 기울이는 모습은 지척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예로부터 술자리가 잦은(이제는 고착화 된 듯 함) 대학문화에서 술 좀 한다는 친구들은 좋은 구실을 찾은 셈이다.

요즘의 대학생들은 입학부터 취업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하는 고달픈 세대이기도 하거니와 최근 들어 전 세계적 금융위기가 불거져 알게 모르게 경제적 강박 속에 대학생활을 해내야 하기에 술자리문화의 고착화도 한편으로 이해될 법 하다. 하지만 욕심이 과하면 화를 부르듯, 넘치면 부족함만 못하듯 과한 술자리는 문제가 아니 될 수 없다.

40여년 전, 필자의 대학시절에도 술자리는 늘 있어 왔다. 당시야 모두 가난했던 시절이니 대포(막걸리)에 짠지(소금에 절인 김치) 한 접시 달랑 놓고 수업시간에 있었던 얘기들로 안주 삼던 술자리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술자리에서 나눴던 얘기들은 소소하기 그지없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문학의 전부인 것으로, 삶의 모든 것으로 생각되었다. 대충 기억의 저편을 더듬어 보면 어설픈 문학론으로부터 삼국유사까지, 그리고 제1차 산업혁명에서 사르트르를 거쳐 도스트예프스키까지, 또한 서구의 민주주의 발전사에서 대한민국의 박정희 군사정권까지 갑론을박 했던 기억이 가물거린다.

그러다 보면 대포 잔에 과부하가 걸리고, 급기야는 몸도 제대로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만취해 다툼이 일고, 고성이 오가고, 종국에는 불쾌하게 헤어져 차라리 자리를 안 한만 못했다고 후회했던 자리도 있다. 물론 좋은 기억들이 훨씬 많다. 취중진담(醉中眞談)이란 말처럼 술을 함께 마셔 보면 사람의 면면이 드러나고, 그래서 오히려 좋은 술친구로 남는 이들도 많이 있다.

요즘 대학생들의 술자리 문화가 무엇인지 잘 모르나 술로 인해 빚어지는 사건사고들의 보도를 심심치 않게 접하며 과함이 부른 화(禍)라 단정 짓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그런 사건사고를 접할 때마다 필자는 계영배(戒盈杯)를 떠올려 보곤 한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잔’ 계영배는 조선시대의 실학자 하백원(1781∼1844)과 그의 제자인 도공(陶工) 우명옥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전설의 잔이다.

도공 우명옥은 조선시대 왕실의 진상품을 만들던 스승도 이루지 못한 설백자기(雪白磁器)를 만들어 명성을 얻고 큰 재산을 모으자 방탕한 생활로 재물을 모두 탕진한 뒤 ‘계영배(戒盈杯)’를 만들었다. 술로 망했으니 술을 경계하자는 의미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삶을 그 잔에 담은 것이 아닐까.

반짝이는 모든 것이 금이 될 수 없듯이, 격랑이 지난 뒤 바다의 평화는 시작되듯이 술자리도, 사랑도, 인생도 한 순간으로, 만잔(滿盞)이 될 수 없음은 세상살이의 이치이고 순리이다. 이 지난한 시절, 모두의 가슴 속에 계영배를 하나씩 간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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