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쟈’의 영국 찍고 아프리카로! ⑥
‘허쟈’의 영국 찍고 아프리카로! ⑥
  • 허지희(문예창작·4) 양
  • 승인 2008.12.02 15:56
  • 호수 12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터디 윅, 그리고 떠나는 친구들

“네?” 나도 모르게 한국말이 터져 나왔다. 한 달에 한 번 모든 가이아들이 학교에 모이는 스터디 윅(Study week). 학교에 가면 이미 DI를 시작한 많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기에 나는 기분이 들떠 있었다. 하지만 학교에 도착하니 다른 문제가 터졌다. 학교에 오자마자 가이아 선생님이 내게 친구들을 위해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해보라고 갑작스레 주문한 것이다. 시간이 없었다. 지난 스터디 데이 때 공부했던 ‘carbon footprint'-내가 얼마나 소비적으로 살고 있는지 보여주는 데이터-를 주제로 잡고, 친구들과 함께 포스터를 만들고 발표 멘트를 적어나갔다. 영어로 뭔가를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사실에 나는 입술이 바짝 마르는 것을 느꼈다.

▲ 스터디 윅 때 함께 프리젠테이션 준비를 하는 모습.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 나는 진부하지만 그럴듯한 이 말을 되새겼다. 시간이 됐고 40여명의 친구들 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시작했다. 카본 풋프린트를 줄이기 위해 주변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일들, 가령 샤워시 두 번 샤워탭 잠그기와 같은 것들을 열거하며 이야기를 이끌어나갔다. 매끄럽진 않았지만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 발표가 끝나고 몇몇 친구들이 엄지를 들어올렸다. 나는 상기된 얼굴을 매만지며 웃음으로 답했다.

일정이 끝나고 우리 팀은 다시 뉴캐슬로 돌아왔다. 다음 주 계획을 짜려고 팀원들과 함께 둘러앉았는데, 팀의 인도 친구-그는 CICD에 지원한 최초 인도인으로 학교 내에서 화제가 됐었다-가 다음 주에 자신은 런던에서 열리는 인도 축제에 꼭 가야한다며 일할 수 없다고 했다. 너무나 단호한 그의 한 마디, 잠시 침묵으로 일관하던 가이아 선생님은 휴일이 아닌 만큼 팀원들과 함께 일해야 한다고 했다.

이 무렵, 나는 함께 방을 쓰는 헝가리 친구가 저녁이 되면 사라지는 것을 알게 됐다.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생긴 것이다. 모든 일에는 타이밍이 있다고 했던가. 그녀는 최근 들어 가이아 일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곤 했다. 자신이 천 장의 리플렛을 뿌려도 많은 백이 수거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이 컸다. 늘 불평을 들어주던 것은 나였지만,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생기면서 그 일은 내 손에서 떠났다.

▲ 함께 좋은 일도 궂은 일도 해 준 팀원들.
며칠 후 아침, 나는 가이아 하우스에 이상한 기운이 감도는 것을 느꼈다. 이제껏 느껴보지 못했던 긴장되고 딱딱한 분위기. 나는 곧 알게 됐다. 인도와 헝가리에서 온 친구 둘이 가이아코스를 그만두기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인도 친구는 무슬림으로, 일반인과 생활리듬이 달라 공동체 생활에 불편을 느끼곤 했었다. 그는 고국으로, 헝가리 친구는 영국에서 남자친구와 함께 지내며 다른 일을 찾을 계획이라고 했다.

기운이 빠졌다. 얼마 전 우리 팀은 가이아를 끝내기 위해 채워야할 포인트가 여전히 많다는 소식을 접해 사기가 잔뜩 떨어져 있던 터였다. 이 와중에 접한 예상 못한 뉴스에 가이아 하우스에는 또 한 번 침묵이 맴돌았다. 떠나는 친구들을 위해 이별파티를 마련했다. 친구들과 함께 폭우 속에서도 함께 웃으며 일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헝가리 친구는 아프리카에 가는 게 꿈이라고 했었는데’,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이 질문에 다다랐다. “남은 팀원들이 다함께 무사히 아프리카에 갈 수 있을까?” 돌아온 건 떠나는 친구들의 행운을 빈다는 작별인사뿐이었다.

허지희(문예창작·4) 양
허지희(문예창작·4) 양

 winkhae@naver.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