⑫ 『그림애호가로 가는 길』(이충렬, 2008, 김영사)
⑫ 『그림애호가로 가는 길』(이충렬, 2008, 김영사)
  • 김은희 기자, 박준범 기자
  • 승인 2008.12.02 20:19
  • 호수 12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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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희 기자의 '진실'
소장품 하나하나에 사연 간직
그림 모으며 겪은 경험, 느낌도 담아

 

 

작가에게 그림은 곧 고향과의 만남이었다. 그는 타향 살이를 하며 느꼈던 고달픔과 외로움을 그리운 풍광과 익숙한 고향을 담은 그림을 통해 풀었다. 때문에 책 속 그림에는 대한민국이 있고, 70년대가 있고, 우리네 고향이 들어있다. 작가는 경제적인 문제로 어려워진 가정 사정으로 인해 이민을 떠났다.

이민 후 곧장 생활전선에 뛰어들었고, 그의 삶은 고달팠다. 그는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고향이 항상 사무쳤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림을 모으게 됐다. 작가는 말한다. “그림으로라도 고향을 볼 수 있었기에 그림을 바라보는 일이 행복하다”라고.

출판기념전에서 만난 이충렬 작가는 비판매 전시작인 그의 소장품들을 하나 하나 가리키며 사연을 설명했다. 이철주 화백의 그림 ‘소리다듬이’를 통해서는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다듬이질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던 고향집을 떠올렸단다. 그는 이호신 화백의 ‘희양산의 밤’을 보며 조국 밤하늘의 별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문호 화백의 ‘청산도’를 통해 고등어파시에서 봤던 배 위에서 간고등어를 만들던 아주머니들의 모습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또 김승연 화백의 ‘서울의 야경’을 보며 ‘서울의 달’이라는 연속극을 도란도란 봤던 지난 날을 추억하기도 했다. 그도 그림이 비싸다는 선입견에 빠져 있었던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때 그림이 먼저 다가왔고, 그는 그림과 사랑에 빠지게 됐다. 미술애호가의 자유분방한 아마추어리즘이 살아있는 이 책 속 글들은 먼저 작가 개인블로그에 연재됐었고 한겨례 논설주간의 사이트인 ‘선주스쿨’에 연재됐다.

이 책은 전문성보다는 그림을 모으며 겪은 경험, 느낌이 살아있는 책이다. 작가는 힘든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작품세계를 추구하는 화가들의 작가정신을 존경하며, 이 글들을 썼다. 미술애호가, 벅찬 미술사랑을 가진 그는 요즘 경제상황이 힘들고 각박하지만 이럴 때 그림 한 점씩 소장하며 그림을 통해 힘든 생활을 위로하기를 추천했다.

또 가격이 싼 그림이나 판화를 지인들에게 선물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화의 힘은 나중에 중년의 삶을 건강하게 만들어 주는 힘”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많은 학생들이 그림에 관심을 갖고 다양한 전시회를 찾아가 미술사랑을 실천하게 됐으면 좋겠다고도 말한다.

그는 “소통도구로써 그림을 보았고, 그림을 통해 고향을 만났다”고 했다. 소박한 장사꾼이라 자신을 표현하던 그는 그림을 통해 정신적 행복과 물질적 풍족도 얻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일상으로 돌아가 일하며, 몇 점씩 그림을 모으고 또 몇 년 후 소장품을 갖고 새 이야기를 하게 됐으면 좋겠다던 그의 모습에서 진정한 『그림애호가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박준범 기자의 '진심'
모국이 그리워 그림을 '만졌다'
그림 속에는 고향의 향기가 피어올랐기에

처음에는 이름을 물어본다. 혈액형을 물어보고, 잠시 후 취미를 묻는다. 남녀 간 첫 만남의 어색함은 그렇게 서로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된다. 만남의 횟수가 거듭될수록 친구를 묻고 가족을 묻고 ‘과거’를 묻는다. 첫 만남의 질문이 상대방에 대한 질문이었다면, 점점 질문의 폭은 상대방의 세계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점’에 국한됐던 궁금증이 ‘면’으로 넓어진다.

이렇듯 사랑은 서로의 세계를 깊고 넓게 알아가는 과정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 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다’는 말처럼 상대방(또는 어떤 것)에 대한 관심은 앎의 욕구를 낳고, 그로 인해 얻은 지식은 사랑의 깊이를 더한다.

『그림 애호가로 가는 길』의 저자 이충렬 씨 역시 위와 같은 ‘사랑의 단계’를 밟는다. 인사동 모 화랑의 문 앞에서 진열된 그림만 쳐다보다 돌아온 첫 만남의 어색함을 시작으로, ‘이 맛에 그림을 모으는구나!’는 탄성을 낼 만큼 그림의 뒷이야기까지 수집하는 애호가로 발전한다. 마치 남자의 이름과 혈액형을 물어보던 여자가 1년 후에는 ‘남자의 과거’를 알고 싶어 하듯 말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그림에 대한 지식, 즉 ‘진실’을 얻은 것이 단순히 사실에 대한 수집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작가는 큐레이터와 화가, 심지어는 그림에게까지 스스로의 세계를 솔직히 드러낸다. 그는 집이 경제적으로 몰락해 대학을 중퇴하고 이민을 갔던 과거,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이 그리워 모국을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곁에 두고 싶어 했던 ‘진심’을 큐레이터나 화가들에게 보인다. 같은 방법으로 영화 ‘서편제’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그림에게 말을 걸면, 그림은 “사실 저 황톳길을 너머에는 뱃자반 고등어를 파는 아낙이 있어”라며 고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림 뒤편의 ‘진실’을 알려 준다.

『그림 애호가로 가는 길』을 단순히 그림을 소개하고 수집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안내 책자로만 읽기에는 어딘가 아쉽다. 작가는 책의 행간을 통해 ‘진실을 알려면 진심으로 다가가야 한다’는 말을 한다. 즉, 애호가가 되기 위해서는(사랑에 빠지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드러내는 ‘자아노출(self disclosure)'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또는 어떤 것)에 관심 있어 앎의 욕구가 생긴다면, 먼저 진심으로 다가가 ‘내 세상’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 어떨까. Everybody waits for somebody. 그림도, 사람도 먼저 다가와 진심을 보여주기를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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