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습지(濕地)의 가치
52 습지(濕地)의 가치
  • 신동희(과학교육) 교수
  • 승인 2008.11.04 13:48
  • 호수 12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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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地球村)’이란 말이 나온 지 이미 오래다. 전 세계를 하나의 마을로 여긴다는 말인데, 전 세계적으로 크고 작은 분쟁이 여전한 것을 보면 사실 이 말을 쓸 상황은 많지 않다. 그러나, 지구 환경 문제에서만큼은 세계 모든 국가가 자국의 이익이 아닌 지구 마을 전체의 공동 이익을 위해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으니 지구촌이라는 말을 해도 어색하지 않다.

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이 공동으로 기거하는 지구 마을 한쪽 구석에서 발생한 환경 문제가 전체 지구 마을의 문제로 연결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따라서, 지구 환경 문제에 대한 전지구적 공동 대응과 협조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의 보전을 위한 당연한 절차일 것이다. 지구 환경 문제를 공동 대응하기 위한 수많은 국제 협약 중 하나가 1971년 이란의 해양 도시인 람사르에서 체결된 ‘람사르협약’이다.

람사르협약은 수많은 환경 문제 중에서도 습지에 초점을 맞췄다. 건강한 지구 환경을 위해 습지가 그만큼 중요함이 드러난다. 이번에 경남 창원 람사르총회 개최의 수훈갑은 정부도, 지방자치단체도 아닌 ‘우포늪’이다. ‘늪’은 ‘물기가 있는 축축한 땅’인 습지에 해당된다.

람사르에 등록된 우리나라 습지 중에서도 보전 가치가 가장 큰 곳이 바로 우포늪이다. 우포늪에 현재와 같이 담수(淡水)가 채워지려면 일단 이 곳이 다른 곳보다 낮아야 한다. 신생대 초기인 약 6,500만년 전부터 이 지역에서는 조륙운동이 시작되었는데, 우포늪이 위치한 창녕 지역은 합천을 비롯한 다른 서부 경남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지형이 되었다.

빙하기 때 해수면의 높이가 낮아 낙동강 일대는 폭이 좁고 깊은 골짜기였고 홍수가 나면 상류의 돌과 흙이 하류로 운반되었다. 간빙기가 되어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높아지자 낙동강 일대가 바닷물로 덮여 내륙의 만(灣)이 되었다. 간빙기 때 내륙으로부터 운반된 퇴적물이 쌓이는 곳도 역시 이곳 만(灣)이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바닥이 해수면보다 높아지고 강의 양쪽에 모래와 흙이 쌓여 비옥하고 넓은 둑, 즉 자연 제방이 만들어져 물이 늘 고여 있는 배후 습지가 되었다.

우포늪을 비롯한 습지가 갖는 생태학적 가치는 잘 알려져 있다. 물도 뭍도 아닌 습지 환경은 조류, 어류, 포유류, 양서류, 파충류 등 다양한 생명체가 살기 더없이 좋은 공간을 제공해 ‘생물 종 다양성’의 산실이 된다. 이 밖에도 습지의 토양은 많은 양의 물을 머금은 채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으므로 우기 때 많은 물을 저장했다가 건기 때 조금씩 주위에 공급하는 자연 댐의 역할도 한다.

또, 습지의 아름다운 경관과 자연 그대로의 모습은 여느 인공 생태 체험 학습 장소에 비할 수 없는 가치를 갖는다. 갈대나 부들 등 수질 정화 능력이 탁월한 생물이 습지에 대거 서식하는 사실도 지표면의 약 6%를 차지하는 습지를 ‘지구의 콩팥’이라고 부를 만한 근거다.

지난 10월 28일 시작되어 오늘까지 경상남도 창원에서 “건강한 습지, 건강한 인간”을 주제로 열린 제10회 람사르총회는 무려 165개국의 당사국이 참가하는 중요한 국제 환경 회의임에도 기대만큼 큰 관심을 받지 못한 채 끝났다. 아무리 경제 불황이라지만 ‘환경올림픽’이라고도 하는 람사르총회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이렇게 저조했음은 환경을 바라보는 우리 인식의 현주소를 알려주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신동희(과학교육) 교수
신동희(과학교육) 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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