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통 속의 국민연금 안내문
쓰레기통 속의 국민연금 안내문
  • 이종운<약업신문 편집국장> 동우
  • 승인 2009.01.05 18:07
  • 호수 12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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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노후대책 위한 ‘밑빠진’ 저금통

올해로 직장생활 만 20년이 지났다. 그동안 월급봉투를 200장 넘게 받았다. 얄팍하지만 노동의 댓가로 생각하고 그때마다 명세내역을 한번 훑어보며 내심 위안을 삼는 부문이 있었다. 바로 ‘국민연금’ 항목이다. 노후를 대비한 저금통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국민연금이 문제가 생겼다. 노후대책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1988년 제정된 국민연금법이 재작년 개정됐다. 주내용은 보험료, 즉 내는 돈은 올리지 않고 받는 돈은 생애 평균 소득의 60%에서 40%로 대폭 깎아 버린 것이다. 월급 360만 원, 연봉 4200만 원을 받는 30대 A씨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국민연금관리공단이 발송한 안내서에 따르면 그는 은퇴 후 매달 101만 원의 연금을 받게 된다고 했다.

‘많진 않지만 이 정도면…’ 할수도 있지만 내용을 꼼꼼히 확인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현재 A씨는 한 달에 32만4000원의 국민연금을 내고 있는데 이 금액을 꼬박꼬박 34년간 빠짐없이 납입해야 101만 원을 만질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인의 평균 소득기간은 20년. 이를 A씨에게 적용해 보자. A씨가 20년 뼈 빠지게 일해서 32만4000원씩 매달 연금을 납입한다고 할 때 그는 은퇴 후 한 달에 고작 62만 원 정도의 연금을 만질 수 있다. A씨가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해서 34년간 직장에 근무하며 연금을 완불, 매달 101만 원을 받게 된다손 쳐도 은퇴한 공무원들이 받는 월 평균 연금 수령액 188만 원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국민연금에 대한 불평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다. 필자와 같은 장기근속자는 연금수령액에 대한 불만이고 비교적 젊은층의 직원들은 재원고갈에 따른 급여자체를 불신하는 분위기이다. 국민연금 납부자체를 거부하자는 저항과 함께 이는 자칫 세대간 갈등으로 이어질 조짐이다.

비단 직장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빈곤계층이 연금을 체납하면 먹고 사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재산을 압류하는 일도 빈번하다. 국민연금에 얽힌 이런저런 문제는 직장인, 자영업자할 거 없이 국민연금을 내야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된다. 굉장히 민주적이다.

모든 불편과 억울함을 국민 대다수에게 아주 평등하고 공정하게 나눠주고 있으니 말이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쥐락펴락하는 돈은 230조 원. 이중 28조 원이 주식에 목매어 있다. 공단은 주식 비중을 17%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에 따라 주식을 꾸준히 사들였지만 주가 급락으로 보유 주식의 평가액이 줄면서 주식 비중은 오히려 약 12% 정도로 줄었다.

공단은 5개 미국 부실 은행 채권을 4500억여 원 어치 사들였다가 1200억여 원의 손해를 봤다는 발표도 있었다. 또 정부가 외환시장에 무모하게 개입하는 바람에 국민연금 수백억이 단숨에 사라지기도 했다. 모두 우리가 보고 들은 일 들이다. 이 정도는 약과다.

국회는 피냄세나는 내용의 연금법 개정안을 여야합의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잽싸게 개정했다. 오직 우리들만 삶에 지치고 오직 우리들만 삶에 지독히 우울해질 뿐, 연금법을 개정한 그들은 오늘도 여전히 국회의사당에서 또다시 대치하고 있다. 여론과 민생을 방패막이로 하면서 말이다. 며칠전 배달된 국민연금 안내서를 보고 한 번, 두 번, 수십 번 찢어서 휴지통에 처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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