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죽전캠퍼스, 나의 대학시절을 만나다
2008년 11월 죽전캠퍼스, 나의 대학시절을 만나다
  • 임수연(경영·99 졸)
  • 승인 2009.01.05 18:12
  • 호수 12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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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동 단국대학교 출신인 나에게 죽전캠퍼스는 생소하고 낯선 곳이다. 한남동캠퍼스 곳곳에 뿌려놓았던 내 젊은 추억들이 있는 그 곳과는 달리, 지나치게 넓은 대지와 막히지 않은 바람이 부는 죽전캠퍼스는 내 지난 시간과는 너무도 다른 세계인 듯했다.

어쩐지 내 지난 대학시절의 4년이 어디론가 훌쩍 날아가버린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이런 저런 생각으로 회계사설명회장으로 옮기는 발길은 사실 무겁기까지 했다. 설명회 강의실 분위기는 한마디로 화목했다. 집 떠난 지 오래되는 맏누나가 돌아온 느낌이랄까, 그냥 없애고 마침표 직어 주세요.

그런 화목한 분위기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후배들은 마치 어제 헤어져 다시 만난 사람들처럼 친숙하고 정감있게 나를 맞아주었다. 그곳에는 10년 전 내 어린 모습을 하고 있는 ‘나’역시도 함께 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내 학부시절에도 이런 설명회가 있었던가? 생각해 보면, 난 학부시절이 무척 바빴다.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기 바빴고, 짜투리 시간을 쪼개어 용돈벌이를 하느라 분주했으며, 자도 자도 끝없이 쏟아지는 잠을 자느라 집안에서 은둔해 있었다. 그러고 보니 강의실에 앉아 나와 눈을 마주치는 그들이 나보다 훨씬 멋지고 대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나와 같은 꿈을 꾸고 있는 그들에게, 그들보다 훨씬 부끄러운 나의 지난 얘기를, 혹시 도움이 될 지 모를 그런 얘기를 그들에게 시작했다. 2002년, 세기의 월드컵과 평생의 꿈을 교환하다. 2002년은 기억하겠지만, 온 나라가 들썩거렸다.

“대~한민국!”을 외치는 함성과 박수소리, 지나가는 자동차에서 경적이 울릴라 싶으면 저절로 두 팔을 들고 “짝짝 짝 짝 짝”으로 전 국민이 하나가 되었다. 내 오랜 친구의 상가집에서 문상을 하는 도중 속으로 구호를 외쳤다는 웃지 못할 해프닝까지 이해가 되었다니, 그 시간의 우리나라 국민들은 아마도 제정신이 아니었나, 싶다.

그 때 난 한남동 단국대 옆, 독서실 구석자리를 월세로 지불하며 회계사 2차 시험준비를 하고 있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내 대학시간은 무척 바빴(?)으므로, 난 대학생 때는 회계사 공부를 하려는 마음조차 없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늦게 시작한 공부라, 거진 만3년을 꼬박 독서실에서 보냈던 내 제2의 수험시절.

그때를 생각하면 나 역시 붉은 옷을 입고 거리로 뛰어다녔던 그들 못지않게 시험공부에 흠뻑 미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나에게는 우리나라가 월드컵 8강에서 승부차기를 했던 진땀나는 순간도, 4강을 진출하는 감격의 순간도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건들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때 난 생각했다.

이 세기의 월드컵을 함께 즐기면 시험에 떨어지게 되고, 이 즐거움을 포기한다면 난 내 평생의 꿈을 이루게 될 거라고. 월드컵이 끝난 2달 후, 난 회계사에 합격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꿈”은 꾸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실현하기 위해 존재한다.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는 시간은, ‘고시병’이라 부를 만큼 어렵고 어려운 길이다. 어찌 보면 내 지난 3년은 월드컵 이상의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아왔던 시간이다. 하지만 이런 시간을 보낸 것이 비단 나만 이겠는가? 독서실에서 늘 등이 보인다고 ‘붙박이장’이라 불린 것도 나만 이겠는가?

가족의 대소사에 빠지고, 한 여름에도 겨울코트를 입고 다니고, 책을 씹어 먹으며 혼자 숨죽여 우는 것도 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회계사가 되고 난 후에도 회계법인에서의 생활은 3년간의 수험생 시간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힘겨운 나와의 싸움이 되고 있다.

실무에 대한 지식, 보다 더 나은 성과를 위한 노력, 끊임없는 IT지식 공부, 업무를 위한 실생활 영어사용 등 이 모든 것은 앞으로도 나를 수험생의 자리를 지키게 할 것이다. 모두들 자신의 목표로 달려가기 위해서는 이보다 더 많은 일들을 하고, 더 많은 일들을 포기하면서 얻는다.

쉽게 얻을 수 있다면 왜 “꿈”이라 했겠는가? 그러니 내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있거든 그것을 얻으려는 피나는 노력과 그것을 위해 다른 것을 버릴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을 즐기길 바란다. 지난 과거가 없으면 현재가 없고 오늘이 없다면 내일도 없다. 그러니 그 모든 열정도, 포기도 자신의 길을 위해 결정할 수 있도록 현명하게 판단하길 바란다. 그리고 그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시간이 오길 기대한다.

임수연(경영·99 졸)
임수연(경영·99 졸)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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