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사(春思)
춘사(春思)
  • 김남필 동우
  • 승인 2009.03.03 23:23
  • 호수 12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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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끝에 채이는 흙이 부드럽다. 봄이 왔다. 시절의 변화는 무상하다지만 여전히 봄은 마음으로 온다. 무언가 두근거리는, 막연한 설레임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봄이다. 가슴을 때리는 비트가 느껴지는 계절. 그것이 봄이다. 그러고 보면 대학은 봄을 가장 절실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긴 겨울방학 동안 적막하기 까지 했던 교정은 3월이 오면 아연 소란스러워진다. 졸업식에 이어 입학식을 지난 교정에 새로운 얼굴들이 가득해진다. 어쩌면 그것은 부활이다. 그 부활의 힘은 신입생이지만 정작 신입생은 무언가 서툴다.

그들의 눈빛에는 호기심, 혹은 불안이 스며들어 있다. 애써 그 감정을 감추려하지만 찬찬히 지켜보면 신입생 특유의 눈길을 감지할 수 있다. 그들의 시선, 그들의 표정, 그들의 발길에서 봄을 느낀다. 서슴없기 보다는 어색하고, 익숙하기 보다는 낯설어하는 감정이 마치 봄의 시작과 같지 않은가.

그래서 신입생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덩달아 설레이고, 두근거린다. 그것이 봄의 느낌일 것이다. 교정을 거닐다 마주치는 그들을 바라보며 옛 시 하나가 떠올랐다.

꽃피어 봄 마음 이리 설레니
(瑤草芳兮春思芬)
아, 이 젊음을 어찌할거나
(蔣奈何兮是靑春)

작가 김훈이 「자전거 여행」에서 소개한 신라의 여승 설요(薛搖)의 시다. 그녀는 이 시를 쓰고 환속했다 하니 佛法(불법)과 수양으로도 억제하기 힘든 것이 ‘청춘의 봄 마음(春思)’인가 보다. 1천3백년 전이었지만 아리따운 여인의 열정이 세월이 갔다고 변함있으랴. 지금 교정에 가득한 저 젊음도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두렵다.

이제 막 스무살을 시작하는 신입생들의 가슴에 담긴 설레임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어찌할 수 없는 젊음’이 너무도 소중하기에, 저 소중한 젊음을 어떻게 든 아름답게 꽃피우도록 도와야 할 책무가 우리 대학에 있기에 나는 두렵다. “아, 저 젊음을 어찌할거나...” 우리가 먼저 그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우리가 먼저 그들에게 익숙해지려 해야 한다.

무엇보다 그들이 우리 대학에 들어온 것이 자랑스럽도록 추임새를 넣고, 힘을 보태줘야 한다. 한 명이라도 먼저 손을 잡아주고,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들의 어깨를 투덕거리며 그들의 몸과 마음, 정신이 우주만큼이나 소중하고 가치있음을 일러줘야 한다.

젊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그만한 자격이 있다. 우리가 봄을 반가워하는 것은 봄이 생명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때론 너무 현란하고, 때론 너무 어수선하고 방약하기까지 하지만 그러니까 봄이고, 부활이다. 그들, 저 아름다운 젊음들 역시 아직 서툴고, 간혹 치기어리지만 그래서 젊음이고, 그래서 희망이다.

만약 그들이 사랑스럽지 않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그대가 늙었음이고, 이미 대학인의 소양이 없음을 자각하자. 나이가 기준이 아니라, 젊음을 보는 눈이 우리 대학인의 연령 기준이 아닐까? 그러니 우리 봄을 설레는 마음으로 맞이하자. 교정에 넘치는 젊음을 보면 애틋하고 정감어린 마음으로 대하자. 나지막히 읊조려보자. “아, 이 젊음을 어찌할거나”.

김남필 동우
김남필 동우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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