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대신문 연중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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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 화(경희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09.03.24 19:24
  • 호수 12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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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소통과 성장 - 인문학의 위기?

인문학이 위기라고?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가? 아마도 대학에서 이른바 문학·사학·철학과들이 별로 인기가 없고, 최근 신문에 보도된 바와 같이 그런 과들에서 제공하는 교양과목에 수강생이 줄어드는 현상 같은 것들을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그런 식으로라면 인문학은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다. 언제 그런 과들이 인기가 높았던 시절이 있었는가?

필자의 기억으로는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없었던 일이다. 물론 조선 시대에는 유학이 나라를 지배하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시대가 완전히 바뀌었고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다. 또 교양과목의 수강자가 적어졌다고는 하지만 그것을 일반적인 현상이라 말하기에는 학교마다 또 강좌마다 편차가 너무 크다. 그러니까 필자보고 말하라면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 자체가 별로 듣기도 좋지 않고 일부 학자들의 엄살 같아서 영 마음에 들지가 않는다.


인문학이란 항상 어려운 가운데에서 명맥을 이어왔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왜냐? 그 학문의 성격상 빵의 학문(Brotwissenschaft)이 아닌 것이다. 아니, 빵이 개입하면 오히려 망가질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니까 국가는 사실 인문학에 대해서는 별로 할 일도 없고 오히려 제발 좀 건드리지 말고 가만 놓아두기를 바란다.

물론 인문학에도 돈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고고학적 발굴이나 사전의 편찬, 또는 옛 문헌들의 번역이나 전산화 등의 작업에는 많은 자재와 인원이 필요할 것이다. 또 학술진흥재단에서 하는 것처럼 학문후속 세대의 지원 같은 데에는 아끼지 말고 돈을 쓸 필요가 있다.

단, 여기서도 쓸 데 없는 연구계획이나 연구방향 같은 것에 신경 쓰지 말고 업적을 낼 만한 똑똑한 연구자들을 뽑아 지원해야 한다. 시험을 봐도 좋고 이미 쓴 논문을 심사해도 좋다. 사람의 능력을 보고 지원해야지 연구계획을 보고 지원해서는 안 된다.

좋은 연구 계획서가 좋은 연구 결과를 가져 오리라는 것은 환상이다. 그렇게 좋은 계획서라면 그 자체가 좋은 연구 결과가 되어야 하지 않는가? 특히 인문학은 앞으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아무도 모르는 학문이다. 정 연구결과가 궁금하다면 내놓은 결과를 보고 심사할 일이다.

또 국가가 필요한 어떤 성과가 있다면 미리 과제를 주고 논문을 현상 응모를 하게 하여 그 결과에 대해 상을 주는 것이 올바른 길이다. 쓸데없는 데 돈을 주는 것은 진짜 쓸모 있는 연구를 하는 사람들의 신경만 상하게 할 뿐 오히려 학문발전을 저해한다.


원래부터 가난했던 인문학은 위기였던 적이 없다. 분서갱유처럼 학자들과 책을 불태우고 땅에 묻어버리지 않는 한 인문학은 산다. 인간인 한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므로. 하지 않을 수 없어서 하는 것이 아닌 인문학이라면 사라져도 상관없다. 그러나 그것은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기에 결코 죽지 않는다. 인간이 인간인 한 어떻게 살았으며 어떻게 살고 있으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인문학이 위기라고 한다. 결국은 그것이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위기는 인문학이 아니고 사람들에게 있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가벼워진 것 같다. 경쾌하다는 뜻으로의 가벼워지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지만 필자가 의미하는 바는 표피적이고 경솔해졌다는 것이다. 그것이 나쁜 일인가?

아무 문제가 없는 태평성세라면 나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지금이 태평성세인가? 아, 여기에 대답하려면 인문학을 해야 한다. 철학을 하려면 당연히 철학을 해야 하고 철학을 하지 않으려 해도 또 철학을 해야 한다. 그런 철학조차 하기가 싫다고? 그렇다면 인간이기를 멈출 것인가? 인문학을 한 사람으로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곤란할 텐데요. 만약 지금이 태평성세라 해도 그런 시기가 별로 오래 가지 못할 걸요.”

최 화(경희대 철학과 교수)
최 화(경희대 철학과 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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