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경춘전에 관한 기록
22) 경춘전에 관한 기록
  • 김문식(사학) 교수
  • 승인 2009.05.21 18:33
  • 호수 12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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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가 거처하며 정조의 태몽을 꾸었던 곳
정조도 이곳 경춘전에서 태어났다

창경궁 환경전의 서쪽에 ‘경춘(景春)’이란 전(殿)이 있다. 우리 숙종의 인원성후(仁元聖后)가 계셨던 곳이고, 그 뒤 선친(사도세자)께서 이곳에 계셨으며, 나 소자(정조)가 여기서 태어났다. 우리나라에서는 왕이 탄생한 전각(殿閣)에는 반드시 이를 기록한 현판을 달도록 한다. 황조고(皇祖考, 영조)께서 나에게 매번 말씀하시길, “이 일은 정령(政令)과 관계가 없을 것 같지만, 훗날 자손들이 이 집에 올라 이 현판을 보면 저절로 그리워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너도 반드시 나의 이 말을 잊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아, 나는 어려서 외롭게 되어 가슴에 담은 슬픔이 하늘과 땅으로도 다하지 못하는데, 이곳에서 그리워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 또 어떻겠는가? 전번에 유사가 두 궁궐을 수리하자고 청했지만 나는 허락하지 않았다.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곤궁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 경춘전은 수리하지 않으면 무너지게 되고, 무너지면 내가 그곳을 돌보고 아끼는 마음이 아니기에 유사에게 명하여 수리하게 했다. 그렇지만 서까래 몇 개를 갈고 주춧돌 하나를 바로잡아, 기울어지는 것을 받치고 비가 새는 것을 막는 정도였고, 칠이 낡아 벗겨지거나 문창살이 삐뚤어진 것은 그대로 두게 했다. 비용을 절감할 뿐 아니라 옛 모습을 보존하여 추모하는 마음을 붙이려는 것이다. 공사가 끝나자 ‘탄생전(誕生殿)’ 세 글자를 써서 문지방 위에 걸고, 이와 같이 기문(記文)을 쓴다. 아, 『시경』에서 “슬프고 슬프다 부모님이여, 날 낳으시느라 힘드셨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누군들 힘드신 부모의 은혜를 생각하지 않겠는가마는 나 같은 사람이 있겠는가? 슬프다.

창경궁 서쪽에 있는 경춘전의 전경.
경춘전 동쪽 벽에는 용 그림이 있다. 내가 태어나기 전날 밤 선친의 꿈에 용이 침실로 들어왔는데, 나를 낳고 보니 꿈속의 용과 비슷한 것을 보시고, 이를 벽 위에 그려 아들을 얻은 기쁨을 드러내셨다. 지금도 종이의 먹이 젖은 듯하고 용의 뿔과 비늘이 움직이는 듯하여, 내가 그 필적을 볼 때마다 감정이 격해 눈물을 흘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이 사실도 함께 기록하니, 후세 사람들은 이 그림이 보배임을 알아 감히 더럽히지 말기를 바란다. 1783년(정조 7)에 정조가 작성한 ‘경춘전기(景春殿記)’이다. 경춘전은 창경궁에 있는 전각건물인데, 1484년(성종 15)에 성종이 건설하여 모친인 인수대비를 모셨다.

이후 경춘전에는 왕비가 거처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정조는 이곳에 살았던 인물로 인성왕후와 사도세자를 거론한다. 인성왕후는 숙종의 두 번째 계비로 영조가 국왕이 될 때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이고, 사도세자는 1749년부터 대리청정을 하면서 동궁의 건물에서 가까운 이곳을 침실로 사용했다.

경춘전은 정조와도 인연이 깊은 장소였다. 사도세자가 이곳에 거처하면서 정조의 태몽을 꾸었고, 정조가 태어난 곳도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사도세자의 태몽은 용이 경춘전 침실에 들어오는 꿈이었는데, 사도세자는 다음날 태어난 정조가 용과 닮은 것을 보고 꿈에서 본 용의 모습을 경춘전의 동쪽 벽에다 그렸다.

1783년에 정조는 흉년이 들었다는 이유로 다른 건물의 수리를 미루었지만, 경춘전 건물만은 수리하고 ‘탄생전(誕生殿)’이란 현판을 써서 걸었다. 국왕이 태어난 건물에는 이를 기록한 현판을 걸어 건물을 보존하는 것이 왕실의 법도였고, 경춘전에는 사도세자가 그린 용 그림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조는 건물의 수리를 최소화했다. 비용을 아껴 국가 재정을 충실히 하겠다는 의도도 있었지만, 사도세자 때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부친을 그리워하는 마음에 부합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글에는 열 살 때 돌아가신 부친을 평생토록 그리워했던 정조의 애절한 마음이 잘 나타난다.

김문식(사학) 교수
김문식(사학) 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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