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 리스트와 언론
장자연 리스트와 언론
  • 박준범 기자
  • 승인 2009.08.06 00:52
  • 호수 12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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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인다. 사람은 자신의 선유지식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접해 온 세상이 자신의 선유지식으로 자리 잡고, 오랫동안 굳어진 시각은 하나의 관점으로 자리 잡는다. 그러므로 개인은 자신의 앎에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아는 만큼 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매스미디어를 통해 쉽게 앎을 얻는다. 도처에 깔려 있는 TV와 인터넷을 통해 적극적 노력 없이도 정보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즉, 대중이 쉽게 세상을 접하는 채널은 매스미디어이다. 따라서 매스미디어는 개인의 세상을 만들고, 더 나아가 사회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도구가 된다.
“장자연 리스트 있대?”
탤런트 장자연씨의 자살 사건 이후 그녀가 남긴 성상납 리스트 관련 보도가 연일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사람들은 장자연 리스트가 사회 이슈임을 알고 있다. 또한 만나는 사람들과의 주요 화제가 되기도 한다. “누가 그녀와 잤을까?”는 요즘 대중들의 은밀한 화두다.
부도덕한 사회 고위층의 명단이 알려지기를 바라거나, 공공연하게 전해오던 연예계의 성상납 루머의 진위가 밝혀지기를 바라는 것이 대중의 관심이 될 수 있겠지만 보도의 초점이 문제의 본질과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명단을 공개해서 관련 인사를 처벌하고 악습의 진위를 밝혀 일시적으로 연예계를 정화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으로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여성 성의 상품화’라는 인식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언론이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와 잘못된 인식을 건드려 문제의 본질에 다가가기 보다는 대중이 흥미 있어 할 만한 사실 폭로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 한 느낌이 든다.
아는 만큼 보인다. 하지만 매스미디어로 쉽게 정보를 얻는 요즘 사회에서는 ‘알려주는 만큼 보게 된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누가 그녀와 잤을까?’를 알려주기보다는 왜 이런 문제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지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는 보도를 할 수는 없을까. 언론이 그럴 수 없다면 대중이 나서야 한다. 어차피 개인은 자신의 앎에 책임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박준범 기자
박준범 기자

 psari@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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