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경대] 개교기념일
[화경대] 개교기념일
  • 김남필 동우
  • 승인 2009.11.11 14:13
  • 호수 126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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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월 3일은 우리 대학이 62번째 생일을 맞는 날이었다. 문자 그대로 ‘개교기념일’을 따진다면 우리 대학이 문을 연 날, 즉 역사에 등장한 날은 11월 1일이다. 이날 우리 대학은 당시 한국에 대한 국제법상의 통치권을 갖고 있던 미군정으로부터 ‘대학 설립 인가’를 받았다. 아직 학생을 모집하여 수업을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인가’라는 ‘탄생신고’를 하였기에 11월 1일이 ‘학교법인 단국대학’의 탄생일인 셈이다.


그렇다면 왜 11월 3일을 기념일로 삼았을까? 그것은 대학 설립을 주도한 범정 장형 선생의 뜻이다. 선생이 11월 1일이 아닌 3일을 개교기념일로 ‘설정’한 것은 바로 이 날이 대학설립에 필요한 기본 자산을 쾌척한 혜당 조희재 여사의 ‘기일(忌日)이기 때문이다. 혜당 여사는 대학 설립 작업을 착수하면서 이미 숙환에 시달리고 있었고 바로 인가장을 발급받은 이틀 뒤 운명을 달리하셨다. 그토록 염원하던 대학 설립, 우리 대학을 다니는 젊은이라면 바로 나의 아들, 딸이라며 기뻐하던 단국대학의 개교를 목전에 두고 그만 눈을 감으셨기에 그 안타까움이 더할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삼엄한 일제 치하에서 여사의 부군이셨던 박기홍 선생과 구국독립의 염원을 함께 나누던 범정 선생의 아픔은 어떠했을까. 범정 선생에게 혜당 여사는 가시밭같던 독립운동의 길을 함께 걸었던 동지이자 피차간에 모든 재산을 대학설립에 쏟아 부었던 육영사업의 굳건한 동업자였을 것이다. 그런 지음(知音)의 관계였기에 범정 선생은 설립인가의 기쁨을 뒤로하고 혜당 여사의 기일을 개교기념일로 잡도록 했다. 동시에 입학식을 갖기도 전에 전 교직원과 입학을 앞둔 예비 단국인들에게 혜당 여사의 장례를 함께 치르도록 했고, 그 숙연함과 엄숙함은 당시 운구행렬에 참여했던 선배들의 추억으로 지금도 선연히 들을 수 있다.


가혹했던 일본 제국주의 통치 하에서 꿈꿨던 민족 교육의 열망, 해방후 산산히 깨져나가던 자주독립통일국가의 염원, 거기에 이념갈등과 무정부적인 신생국가의 혼란 속에서 범정 선생과 혜당 여사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서로의 의지를 믿었고, 아낌없이 전 재산을 기꺼운 마음으로 내놓았다. 믿음이 없었다면, 의지가 없었다면 그 아수라같던 해방직후의 혼란 속에서 한국 최초로 사립대학 재단을 세우는 일이 가능했을까.


우리 대학의 개교기념일은 그래서 다른 대학의 개교기념일과 뜻의 깊음과 무게가 다르다 할 수 있다. 거기에는 수십년을 타국으로 망명하며 유랑했던 한 민족지사의 열정이 용트림하고 있다. 거기에는 가녀린 아녀자의 마음 속에 간직해왔던 굳건한 겨레 사랑과 먼저 간 남편의 육영사업을 이으려는 의지가 죽음마저 초연하며 생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 세월은 가고 자취만 남아 혜당 여사의 추도제를 올리고 그 다음날 하루 쉬는 ‘풍습’으로 퇴화되었다. 이대로 먼 훗날 이 아름다운 역사의 추억마저 산비되어 잊혀질까 두렵기도 하다. 설립자의 유훈을 한 마음으로 되새기고 오늘에 더욱 빛나도록 가다듬어줄 격조있는 행사, 패기와 열정이 가득한 단국인의 축제로 승화되는 개교기념일의 전통을 새로이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김남필 동우
김남필 동우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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