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어디에서 사람구경 할꼬
이제 어디에서 사람구경 할꼬
  • 장현철 동우
  • 승인 2010.03.18 08:34
  • 호수 12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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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오락이나 레저가 발달하지 않았을 때 으뜸으로 쳐주는 세가지 구경거리가 ‘불구경’ ‘사람구경’ ‘싸움구경’이었다고 한다. 법과 제도가 발달하면서 이제는 불구경이나 싸움구경 하기가 힘들어졌다. 링이나 모래판에서 벌이는 씨름이나 권투 같은 격투기가 싸움구경을 대체했고, 긴급 조난체계가 발달해 불구경은 정말로 흔치 않은 일이다.

그래도 여전히 사람구경의 즐거움은 남아 있다. 당대에 일가를 이룬 사람들의 언행을 보면서 태산을 바라보듯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 현대인들의 기쁨중의 하나이다. 꼭 승자에게만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패배한 사람들속에서도 진흙탕의 연꽂이 피어나듯 희망과 가능성을 발견하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는 반전의 드라마에 감동한다.

과거 개발독재사회나 산업사회는 ‘특출한 사람’을 만드는 토양이 굳건했다. 그야말로 ‘세상은 넓고 할 일이 많은’ 탓에 숱한 신화와 감동 스토리가 양산됐다. 그 속에서 정주영, 이병철과 같은 거상이 나타나고 박정희, 김대중과 같은 정치적 거목이 성장했다. 투쟁과 갈등이 크고 깊을 수록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오는 감동의 역사가 한 개인을 통해 발현됐다. 대개가 부나 정치적 대물림이 아닌 홀로 일어서고 수성하는 자수성가의 신화를 갖고 있다. “불행을 세자면 한이 없다. 행복을 세어도 한이 없다. 인생은 이러한 행복과 불행의 도전과 응전관계다. 어느 쪽을 택하느냐가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할 것이다.”(김대중의 일기 중). 명구는 혼자만의 혹독한 고독과 성찰의 세월을 거치지 않으면 결코 나올 수 없다.

개발독재사회나 산업사회에서 종교인은 정치인의 역할까지 겸해야 했다. 권력에 맞서 사찰과 교회, 성당을 나와 거리에서 싸우며 정의로운 길을 걷는 것이 숙명이었다. 김수환 추기경과 얼마 전 입적한 법정스님도 그 행렬에 끼어 있었다. 물론 법정스님이나 김수환 추기경이 명예를 얻을 수 있었던 곳은 거리가 아니었다. 그들의 언행 때문이었다. 초년출세하면 그 허명을 채우기 위해 안달하다가 말년빈곤을 맞이하거나, 마치 허기진 사람처럼 유명을 갈구하다 제풀에 지쳐 쓰러지는 범인과 달리 세상의 명성에 취하지 않고 ‘무명’(無名)의 삶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행복과 불행을 되풀이하는 장삼이사들은 이런 내공 깊은 분들의 말씀 속에서 위안 받고 상처를 달랬다. 그들은 한결같이 거대한 암벽을 기어오르면서 결코 추락의 공포에 떠는 일 없이 작은 바위 틈서리 하나 놓치지 않고 디디고 올라 좌절하고 상처입은 사람들을 향도했다.

이제 당대의 일가를 이루었던 ‘고수’들을 찾아보기가 갈수록 어렵다. 지난해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해 노무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우리 곁을 떠나더니 올해는 법정 스님이 입적했다. 재계를 둘러보면 대물림 회장님 투성이고 정계는 감동과 울림 없는 ‘직업 정치인’ 밖에 눈에 보이지 않는다.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관대한 ‘관용의 미덕’이 없다. 그러니 세상은 누구도 멈추지 않고,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위와 앞만 보고 달리고 또 달린다.
“모든 것이 되고자하는 사람은 어떤것도 되지 않아야 한다. 버렸더라도 버렸다는 관념에서 조차 벗어나라. 선한일을 했다고 해서 그일에 묶여 있지 말라.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듯 그렇게 지나가라.”(법정스님 ‘무소유’ 중). 아무나 할수 있는 얘기가 아니다. 생전의 말빚을 갚기 위해 자신의 책을 절판하라는 엄숙한 가르침을 남기고 수미산으로 떠난 법정스님의 말씀이 오랫동안 귓전을 때린다. 이제 어디에서 사람구경을 할꼬...

 
장현철 (농어촌사회복지회 이사) 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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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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