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돈을 쓰는 행복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돈을 쓰는 행복
  • 박준범 동우
  • 승인 2010.03.23 18:03
  • 호수 12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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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경대’는 무슨 뜻일까? 죽은 자가 저승의  입구에서 마주하는, 자신의 전생을 볼 수 있는 거울이라고 한다. 생전에 지은 착한 일이나 악한 일의 행업이 거울에 나타난다고 해, 업경대(業鏡臺) 또는 명경대(明鏡臺)라고도 한다.

화경대가 그런 뜻이니, 적어도 내게 이 코너는 반성문의 성격을 띠게 된다. 선배들이 볼 때는 한 편의 성장기록이며 후배들에게는 ‘그렇게 살면 안 되는 삶’의 기록이 된다. 즉, 내게 화경대 쓰는 일은 성장드라마 대본을 꾸미는 작업이자 동시에 위험경고 표지판을 만드는 노동이기도 하다.

드라마의 재미와 경고성 메시지를 동시에 전달하기 위해, 드라마처럼 살다 수많은 이야기를 남기고 떠난 비운의 가수 고(故) 김현식의 고백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고백에 빈약한 내 고백도 함께 소개하고 싶다. 그래야 성장드라마의 대본에 재미가 붙고 위험경고 표지판도 튼튼해 질 것 같다.

김현식이 회상하는 자신의 삶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일까? 그는 곡을 만들 때도, 무대에 있을 때도 아닌, ‘아내와 피자가게를 운영했던 1년’이라고 말한다. 결혼 직후 음악으로는 생계가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피자가게를 냈었는데, 아내가 피자를 만들고 자신이 직접 배달을 하며 돈을 벌었던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는 고백이다.

고백컨대, 지금의 직장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쓸 수 있는 곳도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인정받으며 신나게 일할 수 있는 곳도 아니다. 모든 것을 ‘결과’로 평가하는 회사에서, 내 노력과 성실의 과정은 종종 ‘헛수고’로 여겨지곤 한다. 무대에서 노래해야 할 사람이 오토바이를 타고 피자를 배달해야 하는 상황이 지금의 내 모습이다. ‘좀 더 나은 현실’을 위해서 적성이나 꿈을 버려야 했던 모습 말이다.
그럼에도 지금 내가 느끼는 행복의 원천은, 음악을 포기하고 피자를 팔아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김현식의 그것과 같다. 30년 넘게 빚을 져왔던 어머니께 처음으로 용돈을 드렸고, 맨날 얻어먹기만 했던 친구들을 불러내 의기양양하게 밥과 술을 샀다. 물질과 마음으로 빚을 졌던 사람들을 위해 이제는 내가 뭔가 쓸 수 있다는 현실이 행복한 것이다.

행복을 찾겠다며 10년 넘게 성장통을 겪다가 겨우 얻은 ‘경고 표지판’ 하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돈을 쓰는 것이 내 적성을 찾는 것 못지않게 행복하고 중요하다는 것이다. 자기계발도 좋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눈에 비치는 사람들의 행복이다. 그들이 행복해야, 그들을 바라보는 나도 웃을 수 있다.

내일이면 회사에 출근해 또 깨질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25일은 월급날이다.


박준범(KTIC글로벌, 성장전략실) 동우

박준범 동우
박준범 동우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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