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의 미덕
요리의 미덕
  • 김남필 동우
  • 승인 2010.03.30 20:59
  • 호수 12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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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리사라는 직업이 인기직종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필자는 취미로 칼과 도마를 가까이한다. 물론 그래봐야 1년도 안되어 별다른 논리나 특기도 없는 초보 동호인에 불과하다. 그러나 요리는 다분히 관능적이어서 사람의 오감을 이만큼 다채롭게 충족시킬만한 취미도 없다고 믿고 즐기는 중이다. 초보라고 하지만 취미로서 요리를 하며 깨닫는 지혜나 살아가는 법이 작지 않다.

 그 중에서 가장 큰 배움은 ‘천천히 사는 삶의 미덕’이다. 시레기를 재료로 다루면서 새삼 그 미덕을 재음미할 수 있었다. 잘 마른 시레기는 습기를 모두 뱉어낸 대신에 자신의 모양을 그대로 간직한다. 그를 물에 담근다. 물을 머금어 다시 원형에 가까워지면서 그는 쓴맛을 뱉어낸다. 한 철에 반짝 아무렇게나 재능을 방기하지 않고 시간의 흐름에 자신을 감추어 두었다가 필요하면 은근히 속내를 보이는 지혜는 어디에서 배운 것인지.

 시레기의 미덕이 그것뿐이랴. 삶아낸 그를 된장과 버무려 육수에 우려내면 비로소 시레기의 참맛이 드러난다. 그것은 봄의 맛이다. 어찌보면 태양의 향취이다. 바람과 햇살을 온몸으로 담아두었다가 그 숨은 맛을 비로소 드러낼 줄 아는 지혜는 시레기의 미덕일 수도, 아니면 그 숨은 뜻을 간파하는 요리하는 이의 미덕일 수도 있다.

 비단 시레기만 그러할까. 햇살이 밝은 휴일에 담백한 맛을 선보일 오일 파스타를 만든다. 올리브 오일에 매운 고추와 마늘을 얼마나 잘 볶아내는지가 관건이다. 센 불에 너무 오래 노출시키면 고추와 마늘이 쓴맛을 낸다. 적당히 낮은 불을 만나게 해줘야 비로소 고추와 마늘은 달면서 매콤한 맛을 더해 올리브 오일의 느끼함을 덜어낸다. 정작 파스타는 센 불에 빨리 볶듯이 내놓는 게 요령이다.

 한 여름 내내 파스타를 삶고 볶고 나서야 올리브 오일에 마늘의 향미를 잘 우려내는 요령을 스스로 배울 수 있었다. 더불어 파스타에 어울리는 마른 고추가 어떠해야 하는지도….

 재료의 깊은 맛을 끌어내려면 불을 줄여 시간을 더 들인다. 내 안에 무엇이 숨어 있는지를 아는 방법도 마찬가지. 즉물적으로 반응하고 말로 내뱉기보다 좀 더 시간을 두고 감정을 천천히 우려내는 것이 ‘내 안에 숨은 나’를 찾아내는 정답이다.

 이제 불혹의 연대를 끝낼 무렵에서야 새삼스레 삶의 지혜를 깨닫는 것인가. 그것도 부엌에서 칼과 냄비를 도반(道伴)삼아서…. 하긴 시험용 문답 풀이기술이 아닌 대부분의 지식은 생활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닌가. 시인들처럼 작은 술잔으로 바다를 상상하고, 꽃잎으로 우주를 깨닫지는 못하겠지만 요리를 통해 살아가는 슬기를 배우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다. 그러니 요리의 미덕은 결코 작지 않은 것이다.

 비단 작은 깨달음 뿐일까. 이제 정성을 들인 보답을 구할 차례이다. 요리는 내가 아닌 ‘남을 위해서’할 때 가장 큰 기쁨을 준다. 밤을 새워 갈비 육수에 끓인 시레기국은 이제 갓 초보 엄마가 된 친지의 동생에게 보낸다. 깊은 밤 짙어지는 국물에 마지막 간을 맞추며 부디 행복한 모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더한다.

 아마도 요리의 진정한 미덕은 이것일게다. 마음을 담아 함께 나눌 수 있는 것. 사랑을 담아 더불어 나눌 수 있는 것.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고 따듯한 마음을 사랑하는 이에게 ‘맛있게’ 전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미덕이 아닐까. 그래서 오늘도 해질녁 장터에 나선다. 오늘 물좋은 모시조개가 있을까….


 김남필 동우

김남필 동우
김남필 동우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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