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殺 1위, 부끄러운 大韓民國
自殺 1위, 부끄러운 大韓民國
  • 권용우 명예교수
  • 승인 2010.04.06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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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殺 1위, 부끄러운 大韓民國

 

 

권 용 우

<명예교수 · 법학>

 

 

최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OECD 30개 회원국 중 자살사망률이 가장 높다고 한다. 놀랍게도 하루 평균 35명이 귀한 생명을 자살로 마감한다는 통계수치이다. 인구 10만명당 자살사망자가 2006년에 21.6명이던 것이 2007년에 23.9명으로, 2008년에는 24.3명으로 매년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특히, 안타까운 것은 20대와 30대의 사망원인 중 자살이 첫 번째라고 한다. 통계청 발표에 의하면, 자살하는 청소년이 2006년에 232명이던 것이 2007년에 309명으로, 2008년에는 317명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또, 최근 교육과학기술부의 조사에 따르면, 초 · 중 · 고교 학생 5명 중 1명이 한 번이라도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하니,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이들의 고민은 과연 무엇일까? 가정불화 · 염세 비관 · 학업 스트레스 · 이성문제 등이라고 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은 그의 저서 「자살론」(Le Suicide)에서 “자살은 사회적 · 일반적 원인에 의해서 설명될 수 없는 개인적 특질이 있지만, 개인의 외부에 존재하는 사회적 사실이 자살에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그는 그렇게 설명하면서, “여성보다 남성이, 가톨릭 신자보다 개신교 신자가, 가난한 사람보다 부자가, 기혼자보다 미혼자가 더 자살사망률이 높다”고 분석했다.

뒤르켐은 이러한 분석을 통해서 이기적(利己的) 자살 · 이타적(利他的) 자살 · 아노미성(性) 자살의 세 가지 자살형태가 있다고 분석했다. 일상적인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또는 좀처럼 타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자살을 이기적 자살로, 사회가 지나치게 개인을 간섭하기 때문에 저질러지는 자살을 이타적 자살로, 사회가 급격하게 변함으로써 바꿔지는 생활조건에 적응하지 못해서 저질러지는 자살을 아노미성 자살로 정의했다. 그러하다면,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자살행태는 어디에 속할까?

 

‘자살바이러스’ 무섭게 확산되고 있어

 

천안함(天安艦) 침몰사고로 온 국민이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지난 달 29일에는 방송인 최진영 씨가 서른아홉살의 아까운 나이에 목을 매 숨졌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2008년 10월 세상을 떠난 누나 최진실 씨에 이은 동생의 자살소식이었기 때문이었다. 진영 씨는 자기의 미니 홈피에 “지친다. 사람이란 것에 지치고 살아온 것들에 지치고 이런 나 때문에 지친다”라는 글을 남겼다고 한다. 최 씨의 한 지인도 “최근 들어 최 씨가 자주 술을 마셨고, 술을 마시면 힘들다거나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전했다.

우리는 장래가 촉망되는 한 젊은이를 자살로 잃었다. 최 씨는 1988년에 연예계에 데뷔, 영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 ․ ‘방울이’ 등에 출연하였다. 또, 1999년에는 스카이(SKY)라는 예명으로 가수로 데뷔해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남매 연예인’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기도 했는데 말이다.

그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지 못한 우리 사회가 원망스럽다. 늦은 감은 있지만 7개의 종교단체로 구성된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가 정부와 함께 ‘자살예방운동’을 펴나가기로 했다니 반가운 소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 앞서 각자가 생명의 귀함을 명심해야 할 터이다.

프랑스의 황제(皇帝) 나폴레옹(Napoleon Bonaparte)은 “살아 있는 졸병이 죽은 황제보다 낫다”고 했다. 한 번 뿐인 삶을 자살로 마감하는 것은 너무 허망한 일이다.

 

 

생명은 무엇보다 고귀한 것

 

독일의 시인 괴테(J. W. Goethe)는 “우리가 하느님과 자연으로부터 받은 최고의 것은 생명”이라고 했다. 어디 그 뿐인가. ‘한 생명은 지구보다 더 무겁다’는 말도 있다. 이처럼 귀한 생명을 스스로 저버리는 것은 큰 죄악이다.

 

나는 요즈음 매일 아침 중랑천 뚝방길을 걸으면서 기나긴 추운 겨울을 견뎌내고 막 피어나려는 나뭇가지의 새싹을 바라보면서 이른 봄의 새 희망을 머리에 그려본다. 이 나뭇가지의 새싹들은 누구의 도움도 없이 그저 구름사이로 내비치는 봄햇살의 따사로움과 실바람 한 가닥, 그리고 가끔 갈증을 달래줄 물 한 모금만으로 스스로를 틔우고, 피운다. 이 얼마나 귀한 존재들인가.

그런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한 인간으로 태어나서 삶의 간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데서야 어디 말이 되는가 말이다. 어려울 때면 잠시 눈을 감고 주위를 살펴보아라. 누구에게나 고난과 시련은 있는 법이다. 가정불화 · 배우자의 부정 · 고부간의 갈등 · 사업의 실패 · 금전적 손실 · 가난 · 신체의 결함 · 정신질환 · 시험의 낙방. 이처럼 고난과 시련은 한 둘이 아니다. 이러한 고난을 극복하고, 시련을 견뎌야 한다. 이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다.

 

젊은이들여! 부디 ‘생명의 존귀함’과 ‘삶의 소중함’을 명심하라. 그리고, 오직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잘 가꾸어가자.

권용우 명예교수
권용우 명예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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