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갑의 시사터치
조영갑의 시사터치
  • 조영갑
  • 승인 2010.04.26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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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콤플렉스

엘리트 콤플렉스

서양 옷에 우리 몸을 맞추려 하고 있지는 않나

 성적을 받아 든 나는 오금이 저려왔다. 벌써부터 종아리에 날카로운 생채기가 박히는 느낌이다. ‘아, 전 과목에서 7개나 틀렸으니, 곱해서 총 14대구나’ 초등학교 2학년의 고사리손으로 헤아리기 힘든 ‘14’란 숫자는 내게 아득하게 느껴졌다. 눈으로 경쟁자들의 성적표를 훔쳤다. “‘○○도 5개나 틀릴 만큼 어려운 시험이었어’ 라고 항변해야지” 아뿔싸. 경쟁자들은 그들의 밝은 표정보다 더 눈부신 성적표를 받아들고 있었다.

 지옥보다도 가기 싫었던 집. 그곳에는 ‘엄마’라는 염라대왕이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철썩, 철썩, 철썩…” 잘못했다는 말이 반사적으로 나오는 아픔. 염라대왕은 ○○, □□, △△의 성적을 대라고 명을 내린다. 이른바 노암초 2학년 6반의 엘리트 그룹. 그들은 모두 ‘올백’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점수 인플레’라고 불릴 만한 시험이었으니, 엄마의 체벌세기도 인플레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7개씩이나 틀렸으니 말이다.

 자연스레 나의 목표는 설정된 셈이다. 나는 엄마의 공포통치와 나 자신의 조바심에 의해 ‘엘리트 콤플렉스’를 체화했다. 잘해도 같이 잘하고, 못해도 같이 못하자. 그 애들이 보는 책을 읽고 그 애들이 다니는 학원에 다니자. 그러면 나도 ‘올백’을 받을 수 있으리라. 이런 전략은 결과적으로 절반의 성공을 거둬, 나를 명문고와 이류대학에 우겨넣었다. 

 한국의 모습에서 지난 날 나의 엘리트 콤플렉스를 본다. 지독하게 가난했던 조선의 후예가 좇은 것은 구미선진국이었다. 오로지 세계의 엘리트 그룹에 끼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의 발전전략은 고스란히 우리의 교과서였다. 한국의 특수성 따위는 무시됐다. 목표를 위해 무섭게 몰아가는 개발독재자는 염라대왕이었다. 항변하는 자는 불구덩이로 떨어졌다. 가난이 빚어 낸 절박함과 공포통치의 결합. 결과적으로 이 전략은 주효해 한국을 경제 엘리트 그룹에 우겨넣었다. 13위의 ‘어엿한’ 경제대국(2008년 기준)이 되고, G-20라는 우등반에 들어갔다.

 그러고도 부족했나. 우리는 여전히 조급증에 시달리고 있다. 아직까지 선진국을 떠받들며  산다. G-20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하는 것이 자연스레 국운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OECD국가 중 우리만 미디어 규제한다, 법치주의 강화해 ‘선진화’ 이룩하자”식의 구호로 열등의식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힘이 센 한국의 선진국 콤플렉스를 대변하는 증거들이다. 금융위기의 여파로 부작용이 까발려진 신자유주의 정책을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고스란히 받아들이려 하는 대목에선 맹종을 넘어 ‘숭배’에 다다른 느낌을 받는다. 

 내가 엘리트 아이들을 좇으며 자신의 개성을 잃어가고 있었다면, 한국은 선진국, OECD를 외치며 한국만의 고유성을 내던져 버렸다. 구미선진국이 동양의 가치에 새롭게 눈뜨고 있을 때, 우리는 여전히 서양이라는 옷에 우리의 몸을 맞추려 노력하고 있다. ‘우리’는 어디로 갔는가. ‘우리만’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 특성이 혼합적으로 나타나는 한국은 너무나도 독특한 나라다. 억지로 다른 나라와 비교할 필요는 없다.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폴 케네디의 말은 울림이 크다.  

조영갑 (언론홍보·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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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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