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갑의 시사터치
조영갑의 시사터치
  • 조영갑
  • 승인 2010.05.04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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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비군'에 관한 몇 가지 가설

‘야비군’에 관한 몇 가지 가설

 예비군이 왜 ‘야비군’이라 불리는지 궁금했다. 네씨 성을 가진 우리 시대 최고의 지식인에게 물어보았다. 이렇게 답하는 부류가 많았다. “그냥 발음하기 쉬워서죠.” 그런가? 쾌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궁금증을 품고 예비군 훈련장으로 향했다.

 아침에 집에서 나올 땐 귀신도 잡을듯하던 예비군은 훈련장에 도착하면 ‘야비군’이 된다. 잔뜩 야비해 지는 것이다. 여기서 가설 ①번이 성립된다. 야비군은 ‘야비한 군대’의 줄임말이다. 3군 및 전·의경에 예비역 이등병 전우까지 모인 훈련장은 그야말로 국방색 용광로다. 이 용광로는 시뻘건 고로보다 더 뜨거운 각축장이다. 남보다 먼저 서야 빨리 배식을 받을 수 있고, 훈련을 먼저 끝낼 수 있으며, 집에도 빨리 갈 수 있다. 새치기는 기본이요, 훈련을 건너뛰는 무리수까지 횡행한다. 일등용사는 집에 일등으로 도착하는 자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야비함은 줄서기에서만 발휘되는 것은 아니다. 군복은 야비군 전사를 투명인간으로 만들어 준다. 거리낄 것이 없다. 통제관 말 쌩까기, 교육시간에 숙면, 산에다 꽁초 버리기, 퇴소식 전 도망가기 등등 야비군의 ‘스텔스 기능’은 강력한 것으로 평가된다.

 가설 ②번이다. 야비군은 ‘야간비상훈련 군대’의 약자다. 이건 발생론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일당은 야음을 틈타 청와대를 습격한다. 1.21사태다. 이에 놀란 박정희 정권은 향토예비군 부대를 창설한다. ‘일하면서 싸우자’는 것이다. 남한은 순식간에 250만의 예비전력을 갖추게 되었다. 예비군의 활약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어진다. 취약 시간대의 방범순찰은 물론, 강릉 잠수함 침투 사건 때는 야간 작전으로 물샐 틈 없는 방어막을 구축했다. 김신조 사건의 학습효과인 셈이다. 그러나 야간비상훈련을 마다 않는 야비군들이 동원 훈련에서 절대 양보하지 않는 것이 있다. 야간에 중계되는 챔피언스 리그다. 이땐 야간훈련은 전폐해야 옳다. 내무실에 티비가 없다며 폭동을 일으킨 동원 야비군들이 부지기수다.

 마지막으로 가설 ③번이다. 경험론적 접근이다. 필자가 훈련받은 날은 비가 많이 왔다. 예비군들은 환호했다. 비가 오면 강당에 앉아 안보교육을 받을 거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시국이 어느 땐가. 훈련은 에누리 없이 행해졌다. 일부 철모르는 훈련 조교는 비를 맞아가며 ‘야비군’을 훈련으로 이끌려 했다. (그는 이등병이었다.) 그러자 한 예비군 대원의 짜증섞인 한 마디. “야! 비오잖아” 야!비…군이었다.  

 기억하는가. ‘전거성’의 탄생을 알렸던 <100분토론-군 가산점 제도 편>말이다. 여기서 전거성은 “세상에 가고 싶은 군대가 어딨나, 100만원 줘도 안간다”등의 어록을 남기며 수백만 예비군들의 지지를 이끌어 냈다. 그렇다, 우리는 가기 싫은 군대를 다녀왔고, 100만원도 아닌 몇 만원을 받으며 복무했다. 전거성은 이런 우리에게 가산점을 주자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거기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국가의 부름이 한 번으로 족했으면 하는 것이다. 이미 1971년도에 “예비군 훈련이 이중 병역을 강요해 위헌 소지가 있다”는 논의가 있었다. 이런 불만이 예비군이 아닌 ‘야비군’을 양산해 내는 게 아닐까. 이 시스템에 한 해 3000억원 정도가 든다고 하고, 그 집행 주체가 면제자만 가득한 ‘미필자 내각’ 이라니, 이건 그야말로 경제적이지도 않고 떳떳하지도 못한 야비한(?) 일이라 할 수 있다.

p.s. 가설에 대한 결론: 세 가지 가설 중 어떤 것이 가장 설득력이 있을까. 개인적으로 필자는 3번이다. 비오는 날, 예비군 훈련은 정말 짜증난다. 이건 돈 들여 반정부 세력을 양성하는 꼴이다. “야! 비오잖아 XX”가 저절로 튀어나오는 그런…….  

조영갑 (언론홍보·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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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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