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갑의 시사터치
조영갑의 시사터치
  • 조영갑
  • 승인 2010.05.11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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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의 빈곤, 식상함의 성찬 단국축제


필자가 학내 자치언론의 편집장이었던 시절, 각 대학의 축제에 대한 기획기사를 취재했던 적이 있다. 낭비성 행사에 길들여진 학우들에게 축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싶었다. ‘그 밥에 그 나물’식의 축제가 아닌 그들만의 향취를 풍기는 대학들을 수배했다. 그렇게 우리의 그물망에 잡힌 대학은 세 군데. 서울대와 광운대, 백석대였다.

서울대에선 해마다 맛있는 국제회의가 열린다. 이른바 ‘국제음식축제’(이하IFF: International Food Festival)다. 벽안의 백인 유학생이 여학생들에게 연방 윙크를 건네고, 코가 큰 아랍인 학생이 “앗쌀람 알라이쿰(당신에게 평화를)”이라며 손님을 맞는다. 메뉴도 다양하다. 매콤한 향신료의 냄새에 이끌려 당도한 곳에는 케밥이 기다리고 있고, 달콤한 스위스 퐁듀는 여학생들의 다이어트 강박을 무장해제 시킨다. 이렇게 세계 각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은 자국 음식 뿐 아니라 전통의상, 음악 등을 소개하며 자연스럽게 서울대의 구성원으로서 유대감을 다지게 된다.

광운대의 월계축전은 공식명칭 뒤에 ‘디지털 페스티벌’이라는 부제가 붙는다. 전통적으로 디지털 분야가 강세인 이 학교의 이미지를 되살린 것이다. 축제의 중심에는 ‘스크린’이 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단편 디지털 영상물을 공모해 축제의 불쏘시개로 활용한다. 이렇게 매년 예심을 통과한 본선작들은 광운 캠퍼스의 은막을 장식한다. 원년인 2007년도엔 상영작만 70편 정도였단다. 웬만한 영화제 부럽지 않은 열기다. 상금도 후하다. 대상작은 100만원이다. 소모적이고 일회적인 ‘놀자판’을 학생들의 열정과 창의성을 공유하는 배움의 장으로 승화시킨 모범사례다.

천안에 위치한 백석대는 기독교 학교다. 이 학교는 축제를 통해 하나님의 가르침을 실천한다. 명칭도 ‘사회봉사축제’다. 올해 7회째를 맞는 축제는 ‘이웃과 함께하는 대학의 구현’ 을 목표로 하고 있다. 첫 회인 2004년에는 총장과 교직원, 학생이 3000여 포기의 김장을 해 천안시내 26개 읍·면·동 지역의 이웃들에게 나눠줬다. 물리치료학과 학생들은 축제 기간 중 관내 노인들에게 건강 진단, 스포츠마사지 봉사를 해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사랑의 헌혈 운동’에는 총장도 직접 참여한다. 대학이라는 울타리를 없앤 ‘지역친화형 축제’라 할 수 있다.

오늘부터 단국인들의 축제가 시작된다. 단음제, 미스&미스터 단국, 가온로 오르기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가온로에 나부끼는 걸개를 보니 대기업의 후원도 받는 모양이다. 집행부 측의 노력이 눈에 선하다. 그런데 무언가 심심하다. 그래, 색깔이 없다. 단국만의 색깔 말이다. 다른 대학에서는 볼 수 없는, ‘檀國’의 정수를 갈무리하는 ‘특별한 무언가’가 전연 없다. 식상함의 성찬이다. 축제 때만 반짝 살아나는 총학의 존재감이 가련할 정도다. 이게 학생 복지를 부르짖는 총학의 실력인가. 상상력의 빈곤이다. 머리를 굴려라, 총학이여. 

조영갑 (언론홍보·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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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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